허리케인 ‘내우’ 와중에 北 도발
대북 원유 금수 조치 등 예상
일본 영공을 넘어가는 북한의 29일 미사일 도발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위협한 데 이어 북한 도발이 잠시 잠잠하자 ‘(김정은이) 미국을 존중하기 시작했다’고 자부하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코 약세를 보일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와 알자지라 등 주요 언론은 북한이 ‘말 폭탄’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WP는 “김정은 집권 중 가장 뻔뻔한 도발이며 평양과 외부 세계 사이 긴장을 재점화했다”고 이번 발사를 평가했다.
김정은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당장 확실한 조치를 내놓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도발이라는 ‘외환’에 차분히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텍사스가 물에 잠긴 마당에 북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위기를 겪었을 정도로 미국에서도 재난 구조는 대통령의 정치 생명과 직결된다.
미국 언론도 ‘미사일 도발’을 텍사스 홍수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비중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텍사스 사태 해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도발 당일인 28일(현지시간) 내내 관련 트위터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고, 29일 오전 내놓은 백악관 공식 성명에서도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기존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멜라니아 여사를 대동하고 재난 지역인 텍사스를 방문했다.
하지만 허리케인 변수가 트럼프 대통령의 반격을 오래 지체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희망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친분 관계와 평소 트럼프 대통령의 성정을 감안하면,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몰아붙이는 강공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제니 타운 부소장은 “일본은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온적으로 대응할 경우 방위의지를 의심하고 미일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 도발 직후(28일 오후)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해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공개 회의를 29일 밤 곧바로 소집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강조한 바대로 대북 외교ㆍ경제적 압박과 군사 압박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ㆍ경제적 압박은 안보리 회의에서도 논의되겠지만, 마지막 카드로 남겨둔 대북 원유금수 조치가 유력하다. 또 쿠웨이트, 이집트 등 미국 영향력이 미치는 유엔 회원국 중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나라에 이들의 추방을 요구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동북아 긴장고조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이 시험 발사하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등 군사 대응의 수위도 높일 수 있다. 다만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선제타격 혹은 예방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낮은 10% 미만의 수준이라는 게 워싱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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