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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계부채, 점진적 종합적 해법으로

입력
2017.08.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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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의 수준 및 증가 속도가 OECD회원국 평균을 크게 앞질렀다. 2014년 이후 3년간 우리 가계부채의 연간 증가액은 금융위기(2008년) 이후 2013년까지의 무려 2배나 된다. 같은 기간 증가율도 7.4%에서 9.6%로 크게 높아졌다. 그렇다 보니, 2015년 말 우리나라 가처분소득 및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각각 169%, 91%로 OECD 27개국 평균인 134%, 72.4%를 상회했다.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이렇게 빠르게 늘어난 배경은 복합적이다. 부동산 규제완화로 주택가격 상승기대가 만연했고, 높은 주택보유성향 속에서 적극적인 차입계층(35~59세)이 증가했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를 위한 자영업 진출 및 임대주택 투자의 확대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저성장에 대응하는 저금리정책의 장기화도 일정부분 촉매 역할을 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연초에 흥미로운 가계부채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1990년에서 2015년까지 54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계부채는 단기적으로 소비를 늘리고 GDP증가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특히 가계부채가 GDP의 일정 비율(80%)을 넘어서면 이 현상은 더욱 심화한다고 했다. 가계부채가 소비를 제약하는 임계치는 국가별 특성 때문에 일률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그런데, 2016년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부채 보유가구의 약 70%가 원금상환 부담을 느끼고, 이중 약 75%는 실제로 소비 지출을 줄인다고 조사됐다. 우리 가계부채도 이미 소비 제약 수준을 넘었음을 시사한다.

가계부채 누증이 소비제약을 넘어 금융불안까지 야기할까. 높은 부채 수준 그 자체는 리스크를 야기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2016년 현재 금융부채를 가진 가구의 총자산은 총부채보다 3.9배 많고 금융자산은 금융부채보다 1.2배 정도 많다.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고소득 계층이 안고 있어서, 실물자산 가치의 폭락이 없는 한 가계부채가 전면적인 금융시스템 문제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

가계부채 해법은 우리 경제의 취약한 회복 기조를 감안해야 한다. 10년 전 가계부채 위기를 성공리에 극복한 아이슬란드는 ‘위기’ 모멘텀 덕을 봤다. 외자 유출에 따른 통화 가치와 부동산 가격의 급락 등 금융 불안을 계기로 적극적인 가계부채 조정을 이룰 수 있었다. 단기적 고통 수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국가들은 장기간 경제 활력 저하라는 비용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려 들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종합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볼 때, 가계부채 감축보다는 소득 증대를 통한 부채 부담의 경감화가 훨씬 낫다. 은행대출 규제는 풍선효과를 통해 저신용 채무자들을 고금리 대출로 내몰게 된다. 대출기회 축소는 자칫 취약계층의 생계를 위협할 수도 있다. 취약계층에 중점을 두는 일자리 창출 노력과 소득증대책이 절실하다. 경쟁력이 요구되는 자영업의 무리한 확대보다는 사회적 기업 활성화나 고령층 고용기회 창출이 더 안정적이다.

대출 억제 위주 정책은 높은 가계 대출 수요의 감축에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먼저 가계의 교육비 지출 부담을 낮추도록 공교육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가계자산의 부동산 편중도 완화해 나가야 한다. 가계자산의 유동화를 통해 자산 가치를 안정화시키고, 부채 문제 치유 과정에서 금융 불안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방화벽도 처야 한다. 금융기관도 그 동안 가계부문 위주의 대출 운용을 개선해 시중자금이 보다 생산적인 부분에 환류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슬란드 금융위기의 교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중앙은행(2012년)이 펴낸 자료를 보면, 금융기관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가계의 재무 자문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금융시스템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경제안정에도 기여해야 한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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