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을 외치는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MBC 본부가 2012년 이후 5년 만에 총파업 수순을 밟는다. 이번엔 긴 싸움이 끝날까.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만난 신동진 아나운서는 “2012년과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사장이 최근 퇴진 거부를 분명히 한 건 그만큼 심리적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우리끼리는 ‘드디어 그가 링 위에 나타났다’고 얘기해요. 공영 방송을 위한 투쟁의 불길은 앞으로 더 무섭게 번질 겁니다.”
경영진에 미운 털이 박힌 신 아나운서는 2012년 이후 뉴스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5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그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22일 아나운서 27명의 제작거부 기자회견에서 회사 선배이자 대학 동문인 신동호 MBC 아나운서 국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 화제가 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 신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가 뉴스에서 얼굴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나타나니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며 “내부 구성원이 MBC 재건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리려고 그래도 용기를 냈다”고 했다.
1996년부터 마이크를 잡은 21년 차 아나운서인 그는 2012년 파업 이후 아나운서 업무와 무관한 사회공헌실에 배치됐다. 이듬해 부당 전보 무효 판결에서 승소해 아나운서국에 복귀했지만, 경영진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가 한국아나운서협회 회장 자격으로 발간한 ‘아나운서 저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등을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2014년 주조정실 MD로 보냈다. 주조정실은 강성 노조원들이 모인 ‘1급 정치범 수용소’로 통하는 곳. 신 아나운서는 요즘 뉴미디어뉴스국에서 온라인 기사 편집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관리를 한다. 그는 “아나운서, 기자, PD 모두 언론인으로서 존재 가치와 자부심을 지닌 이들인데, 마이크를 빼앗는 것은 인격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신 아나운서는 “내가 겪는 고충은 그래도 소소하다”고 했다. 스케이트장을 관리하는 김범도 아나운서와 후임 MD가 된 조능희 전 노조본부장… 모멸감을 겪는 사례가 넘쳐난다고 했다. 신 아나운서는 “보도국에 남은 후배들도 사측 입장에 서서 편향적 뉴스를 보내야 하는 괴로움이 상당했던 모양”이라며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결기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부당 전보 당한 우리 만큼 마음이 견고한 걸 느꼈다”고 말했다.
신 아나운서는 5년 간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대출을 받은 직원을 비롯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례도 들었다. 그는 “그래도 10년 이상 일한 일터를 떠난다는 게 쉽지 않다고 하더라”며 “훌륭한 조직으로 되돌리자는 갈망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지난 10년 간 MBC에 제대로 된 시사 보도가 실종됐습니다. 사회 문제를 주도적으로 지적하는 비판적 시선이 없었고 뉴스가 뉴스가 아니었어요. 내부에서 끊임없이 투쟁해야 했지만 싸움이 길어져 동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국민의 많은 관심과 동참으로 하루 빨리 승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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