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하루는 삶의 현장마다 포진한 알바생과 최저임금 노동자를 만나는 과정이다. 출근길 들르는 편의점의 휴학생, 지하철 역사를 청소하는 중년여성, 회사 앞 커피전문점 알바생, 점심 메뉴를 나르는 중국동포 종업원, 저녁에 치킨을 배달하러 오는 오토바이 청년까지. 한 시간 일 해 6,470원, 월급 환산 135만원을 손에 쥐는 이들이 바로 한국 서비스업의 얼굴이다. 이들은 서비스산업의 중핵이지만, 자기 회사 안에서는 조직의 가장 바깥에 있는 존재다.
가장 밖에 있다 보니, 그들은 악성고객(흔히 진상손님이라 한다)이 거리낌 없이 내뱉는 감정의 오물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다. 욕설, 툭툭 던지는 반말, 너 말고 점장 나오라는 고성, 분노한 삿대질을 당하기 일쑤다. 서비스업 인건비가 박하면서도 ‘손님은 왕’이란 말이 통하는 곳, 서비스업을 오래 하면 성악설(性惡說)을 믿게 되는 이 나라에서, 진상손님은 서비스업 노동환경과 업장의 선량한 분위기를 망치는 원흉이다.
최근 들었던 대형서점 직원의 얘기는 이랬다. 서가 앞에서 종이컵에 아이 소변을 누이는 엄마에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했더니, 그 엄마가 본사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직원이 도리어 연락해 사과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처럼 나라가 진상 천국이 된 이유는 바로 기업의 처신 때문이다. 진상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손님을 편들고 직원의 사과를 요구한다. 손님 같지 않은 손님이 올려 줄 몇 푼의 매출을 이유로 직원에게 인내를 강요한다.
왜 그럴까? 회사가 창출하는 이익을 가장 많이 챙기는 이들은 손님과 가장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상 문제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 진상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대개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해법을 제안한다. 바로 ‘서비스노동자의 인격권 및 권익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진상방지법)이다. 이 법은 서비스노동자 및 공공기관 민원근무자를 손님(민원인)의 횡포에서 지키고, 서비스노동자에 대한 권익침해가 발생했을 때 그 처리의무를 회사에 부과하는 법이다.
손님의 권리침해가 발생하면 즉시 손님과 직원을 분리시키고 관련 증거를 수집하도록 하는 등 피해 직원에 대한 보호의무를 회사에 지우자. 폭행ㆍ욕설 등 심각한 행위라면 회사가 의무적으로 관계관청에 신고해 사건이 처리될 수 있게 하고, 법률적 지원을 하게 하자. 큰 기업은 법무팀이 있어 대응할 수 있지만, 영세업장은 노동관청이나 법률구조공단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 회사가 직원에게 갑질을 참으라 했거나 사안을 무마하려 한 때, 법인이나 경영주에 행정적(또는 형사적) 불이익을 주자.
특별법처럼 별도로 강하게 처벌할 조항 같은 걸 만들자는 건 아니다. 범죄 구성요건을 만족시키는 진상들을 형법의 영역으로 인도할 수만 있으면 된다. 욕하면 모욕죄, 점원에게 물건 던지면 폭행죄(꽃으로 때려도 죄다), 무릎 꿇으라며 의무 없는 일을 강제하면 강요죄, 들어줄 필요 없는 과한 요구를 장시간 반복하면 영업방해죄를 적용하면 된다. 지금은 강요된 인내 속에 묻혀버리는 이 ‘범죄’들이 단죄로 연결될 수 있게, 회사의 처리 의무를 강제하자는 것이다.
전과자를 양산한다고 반대할 수 있겠지만, 이 법은 극소수 진상들로부터 절대다수 선량한 손님과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지키는 수단이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욕설을 퍼붓는 손님은 대형마트 가서도 캐셔를 괴롭히는 ‘만년 진상’일 가능성이 높다. ‘진상범죄’가 분명하게 처벌된다는 메시지가 반복되면, 자기 스트레스를 무고한 약자에게 배설하는 비겁한 자들의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는 치유될 것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을 손님의 부당한 처우로부터 지켜주는 일 역시,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시급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절실한 일이다.
이영창 경제부 차장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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