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부문 핵심 공약이었던 근로시간 단축(주 최대 52시간)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정과제에도 포함됐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추진 의지를 밝혔으나, 근로기준법 개정이 국회 문턱에서 멈춰선 것이다. 고용부가 행정해석(지침)을 폐기하는 방안도 있으나 정부는 법개정 쪽을 선호하고 있다.
국회는 28일부터 이틀간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어둡다. 환노위 관계자는 이날 회의를 마친 후 “여야 간 이견이 여전해 29일까지 합의는 어렵다”고 전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 최대 연장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가 2004년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내린 탓에 실제 적용되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68시간(토ㆍ일 16시간 추가)이다. 여야는 앞선 3월 근로기준법에 ‘1주는 휴일을 포함한 7일이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이라는 내용을 넣는 데까지는 잠정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시행시기 및 방법 등 완충장치 마련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날 여야의 잠정합의 사항은 여러 쟁점 중 ‘기업별 단계적 시행’의 기준을 마련하는 선에서 그쳤다. 대기업부터 먼저 적용하고 중소ㆍ영세 사업장의 경우 준비할 시간을 주겠다는 취지이다. 국회 환노위 고용소위원들은 기존 입장에서 한발씩 물러나 사업장 규모를 ▦5인 이상 ▦50인 이상 ▦300인 이상 등 ‘3단계’로 나누는데 잠정 합의했다. 앞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00인 이상ㆍ300인 미만으로 나눈 2단계 적용을,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은 ▦100인 미만 ▦100인 이상~300인 미만 ▦300인 이상~1,000인 미만 ▦1,000인 이상 등 4단계로 나누는 방안을 주장했었다. 다만 기업규모별로 적용 시기 차이를 어떻게 둘지는 합의하지 못했다.
또 다른 쟁점인 휴일에 연장근로를 할 경우의 중복할증이나 특별연장근로(주당 8시간)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시간에 상관없이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합해 통상임금의 2배를, 한국당은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휴일근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자는 입장이다. 또 민주당은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해진다며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근로시간 단축이 안착될 때까지는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허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회의 법 개정 작업이 늦어지자 노동계는 고용부 지침을 폐기해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2012년부터 여야가 관련 논의를 시작했으나 5년 째 매듭을 짓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ㆍ정ㆍ청 모두 ‘합의 불발 시 지침폐기’를 외치고는 있지만, 내심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포함한 일부 여당의원들은 법 개정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부위원장은 “지침만 폐기되면 주당 52시간 초과근로는 즉시 불법이 돼 사업주들이 당장 처벌을 받고, 근로자들 역시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이 줄어 들어 드는 등 현장의 혼란과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