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무 많이 아무렇게나 쓰이고
사기처럼 느껴져 평과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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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싼 분야는 계속 사람 써
AI, IoT 등 개별기술이 핵심 아냐
산업 생태계 바꾸는 전략이 중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끄러운 소몰이꾼이 돌아다니고 있다. 대개 “지금 당장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 네 아이들은 로봇에 일자리를 뺏긴 거지가 될 거야”라는 고약한 협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 따위는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면 다보스포럼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2016년 4차 산업혁명을 의제로 택했을 때다. 미국과 유럽 주요 언론에선 “무의미한 구호” “멍청한 소리”라는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사정도 매한가지다. 한쪽에선 어서 빨리 따라잡기 위해 이 참에 또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18번 레퍼토리’가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아무 실체 없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 와중에 ‘4차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귀환’(클라우드 나인 발행)이 나왔다. 대목 맞은 듯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책 중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태어난 독일 경제 전문가 12명이 함께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획과 집필을 주도한 김은 한국ICT융합네트워크 상근부회장에게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물었다. 독일 쾰른대 경영학 박사인 김 부회장은 국회 4차 산업혁명포럼에서도 일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단도직입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진짜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너무 아무렇게나 쓰이는 바람에, 솔직히 장사하는 느낌, 사기치는 느낌이 들게 되어버린 감이 있다. 그 반감 때문에 평가도 양 극단으로 나뉘는 것 같다. 씁쓸한 풍경이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변화의 양상은 분명히 있다. 다만 변화의 초입이다 보니 그게 진짜 산업혁명이라 부를 만한 수준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독일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처음 나온 배경은 무엇인가.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신재생 에너지에 주목하면서 그걸 ‘3차 산업혁명’이라 불렀다. 독일 사람들이 보기엔 그건 산업혁명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모델 수준이었다. 디지털화에 따른 미래 산업전략을 구상하던 과정에서 차라리 이걸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자 한 거다.”
-독일은 바람 잡는 소리, 허튼 소리를 하는 나라는 아닌 거 같은데.
“맞다. 제조업 강국이라는 맥락이 깔려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같은 기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렇게 되면 공정이 자동화돼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식으로만 이해한다. 오해다.”
-그럼 바람직한 이해는 뭔가.
“독일 맥락을 봐야 한다. 가령 아디다스의 스마트 팩토리 전략을 보자. 우리는 자꾸 600명 일하던 공장에 10명만 일해도 된다, 저러면 사람들 다 실업자 되겠네, 이렇게만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아디다스는 각 동네 자그만 매장에 들러 발 모양을 스캔하면 5시간 안에 신발을 만들어 24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걸 목표로 정했다. 대량 생산 시대는 이제 갔다, 개성화(Personalized)된 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최적의 운동화도 팔겠지만, 동시에 각 매장에 들어갈 신발 제조 미니 로봇들도 만들어 팔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결국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생각해보라. 대량생산 시대엔 고심해서 뭘 만들어내 봐야 비용 때문에 해외에 공장을 만들어야 했고, 그나마도 후진국이 금방 따라잡는다. 이 딜레마를 한번에 돌파해내겠다는 게 아이다스의 스마트 팩토리 전략이다. 이게 성사되면 독일의 좋은 일자리는 더 늘어나게 된다. 한마디로 제조업 강국으로서 꽃놀이패를 쥐겠다는 얘기이자, 경제 전반의 생태계를 어떻게 재조정할 것이냐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몇 년까지 스마트 팩토리 1만개를 짓겠다는 둥 하는 건 헛다리 짚는 소리다.”
-대량실업 걱정은 기우인가.
“인건비가 싼 곳은 그냥 사람을 쓰면 되지 그 비싼 기계들을 애써 들여와 쓸 이유가 없지 않겠나. 중요한 건 전체 산업 생태계를 고려한 전략적 사고다.”
-그러면 우리와 딱 맞아떨어지긴 어려운 게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우리 소비 시장은 개성화된 시장이라기엔 특정 제품이나 유행에 쏠리는 현상이 강하다. 우리 생산자들이 제조나 기술면에서 아주 특화되어 있다 말하기 또한 어렵다. 문화와 역량의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참고할 점은 있다. 독일이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는 건 결국 ‘제조업 중심의 국가 발전 전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다. 우리도 제조업 중심 국가 아닌가. 우리 제조업의 장기 전략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그게 바로 우리의 4차 산업혁명이 되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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