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베이징서 고려항공에 미국인 8명 탑승
“북한여행 금지가 임박하면서, 바로 지금이 아니라면 가볼 수 없다고 생각해 결심했습니다.”
지난 26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 공항에서 CNN과 인터뷰한 미 버지니아주 출신 니콜라스 버크헤드는 급하게 평양행 고려항공에 몸을 실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CNN은 버크헤드와 같은 세계 여행자(globetrotter)에게 당국의 체포나 수감, 혹은 피어오르는 전운(戰雲) 따위는 북한여행을 금지할만한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억류됐다가 17개월 만인 지난 6월 혼수상태로 풀려났으나 송환 엿새 만에 사망하자, 미 국무부는 지난달 미국 국적자의 북한 방문 및 체류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9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이날 평양행 고려항공에 탑승한 미국인은 버크헤드를 비롯해 모두 8명. 동승한 윌 리플리 CNN 도쿄특파원은 “좌석은 평소보다 약간 더 한산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동승한 미국인 중 사이먼 콕렐은 베이징에 기반을 둔 여행사인 고려여행사 매니저로 이번이 165번째 북한 여행이다. 그는 “북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여행금지조치는 아쉬운 일”이라며 “미국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알고싶어하는 북한인들에게도 이는 매우 안타까운 조치”라고 말했다. 동승자인 알리 카림은 “여행금지 조치 전 마지막 날이지만 여행객들은 평소와 별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 D.C에 사는 전직 의사인 그는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세계 여행을 하고 있으며 여행 금지령 때문에 평양행을 몇 달 앞당겼다.
리플리 특파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인스타그램에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이어진 이번 여행 사진 몇장을 올렸다. 웜비어 사태 여파 때문인지 여행객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댓글들이 대다수였지만, 일부는 “인종편견으로 가득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보다 북한이 더 안전할 것”이라며 트럼프의 북한여행 금지 조치와 대북 강경책을 비꼬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지난 24일(현지시간) 미 시사주간 타임은 북한여행금지령 발표를 앞두고 북한에 남아있는 미국인들이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해 주목했다. 현재 북한에 체류 중인 미국인은 200여명으로 주로 원조, 교육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진ㆍ선봉 자유무역지대에서 사회기업 지원 및 인도적 활동을 하는 50여명, 북한 유일의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 교직원과 교수진 70여명, 이밖에 유진벨 재단,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의료ㆍ식량 원조를 제공하는 NGO(비정부기구)나 국제기구 요원 등이다. 그러나 이들 미국인이 북한에서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미 국무부는 언론인이나 인도주의적 목적, 국익 관련 목적 등의 경우에는 특별여권을 통해 방북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허용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9월 초 새 학기를 시작할 예정인 평양과기대의 미국인 교직원은 교재 등은 그대로 둔 채 8월 말까지 모두 귀국할 예정이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이들의 활동은 미국에는 정치적으로 유익하다”며 “고립된 세계에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미국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고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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