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국내에서 스릴러의 탈을 쓴 공포영화는 많이 제작됐지만, 호러 요소에 집중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가운데 올 여름 유일한 국내 공포영화 ‘장산범’이 등장했다. 특히 한국 공포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장화 홍련’의 배우 염정아가 ‘장산범’의 주연을 맡았다는 데 의미가 더해졌다. 13년 만에 공포영화로 돌아온 염정아는 또 한 번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염정아는 “하다 보니까 이렇게 오래 걸렸다. ‘장화 홍련’ 끝나고 일부러 공포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하고 싶은 공포물이 없었다. 이번 작품은 드라마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공포 요소에 리액션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얘깃거리가 있는 게 좋다”며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장산범’이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존재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친근한 이의 목소리와 일상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이 이질감을 준다는 것 때문에 더욱 충격을 준다. 염정아는 “우리 영화를 본 후에 거울 다 덮어놓고 주무셨다는 분도 있더라”라고 웃었다.
염정아는 남들에게 ‘스릴러 퀸’이라고 불리지만 본인도 공포에 강한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공포영화는 원래 찾아서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보면 재밌다. 허정 감독님의 전작 ‘숨바꼭질’이 개봉했을 때는 초대 받아서 봤었다. 그렇게 무서운 영화인 줄 모르고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보고 나서 문단속도 매일 하고 엘리베이터도 무서워졌다”며 “‘장산범’은 내가 이미 반복해서 본 내용이기 때문에 덜 무서웠다”라고 털어놨다.

‘장산범’에서 염정아가 맡은 희연 캐릭터는 과거에 자식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다. 트라우마에 갇힌 엄마 희연은 미스터리한 소녀에게 홀리게 된다. 결국 그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이 장면은 극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허정 감독과 염정아는 관객에게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디테일하게 감정선을 만들어 나갔다.
염정아는 “나 듣기 좋으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감독님께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니까 나였다고 하더라”라고 운을 뗀 후 “사실 나는 공포 부분보다 희연이의 드라마가 많이 와 닿았다. 대본을 볼 때도 현장에서도 많이 울었다. 희연의 감정은 초반부터 많이 힘든 상태로 시작해서 끝까지 몰고 가야 했다. 나는 마지막 희연이의 선택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너무 슬펐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과는 엄마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감독님이 미혼이시라 희연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본인이 쓰긴 썼는데 ‘실제 엄마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셨고, 나는 ‘감독님이 쓴 게 맞다’고 말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장면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을 느껴야 할 때가 많았다. 염정아는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모성애를 기반으로 믿음을 이야기 한다. 감정적으로 더 몰입하기 위해 ‘장산범’은 스토리라인에 따라 순서대로 촬영했으며 후시 작업이 필요했던 일부 장면은 인이어를 끼고 감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염정아는 “왔다 갔다 하면서 촬영할 자신이 없어서 순서대로 찍었다. 동굴 신도 나중에 후시녹음을 따로 진행했지만, 촬영할 때도 인이어를 끼고 했다. 거의 마지막 신이었는데 그동안 감정을 쌓아온 것들이 더해지면서 감정적으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여러 테이크를 촬영했는데 똑같이 슬프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영화는 주인공의 감정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상태에서 끝이 난다. 촬영이 끝난 이후 어떤 식으로 해소했냐는 질문에 염정아는 “촬영 내내 빠져 있어서 힘들었던 건 맞다.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안 나오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홀가분하게 나온다”라고 답하며 웃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연예관련기사]
이준기-전혜빈 측 "최근 결별…바쁜 스케줄로 멀어져"(공식입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