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카카오톡으로 보낸 ‘찰흙 옥자’ 사진
2013년 경기 고양 아쿠아 스튜디오. 영화 음향 스튜디오 라이브톤의 최태영 이사가 ‘옥자’를 처음 본 건 ‘해무’의 촬영장에서였다. ‘해무’를 제작했던 봉준호 감독이 손에 든 아이패드를 통해서다. 봉 감독은 자신이 직접 스케치한 ‘슈퍼 돼지’ 옥자의 그림을 최 이사에 슬쩍 보여줬다. “사운드 생각 좀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1년여가 흘러 2014년 11월 26일. 봉 감독은 최 이사에게 찰흙으로 만든 옥자의 사진 두 장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최 이사는 아이의 눈망울에 하마의 입을 닮은 돼지의 모습이 낯설지만 따뜻해 보였다고 했다. 봉 감독은 최 이사에게 “옥자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여성적”이라고 소개했다. 덩치는 ‘산’만 한 옥자가 좋아하는 건 홍시다. 채식을 즐기는 돼지는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강원도 산골에서 순박하게 자란 옥자는 소녀 미자(안서현)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돼지지만, 인간적이란다.
뉴질랜드에서 ‘옥자’ 소리 찾은 이유
최 이사는 머리가 아팠다. 세상에 없는 동물의 목소리를 감독의 상상력에만 의존해 소리를 만들어야 한다니. 중요한 건 ‘옥자’의 목소리였다. 최 이사는 뉴질랜드 음향 엔지니어에게 S.O.S를 쳤다. 전작인 ‘설국열차’(2013)에서 음향 작업을 함께 한 뒤 친해진 동료였다. 옥자의 모형 사진을 본 외국 엔지니어는 바로 뉴질랜드 토종 돼지(쿠니쿠니)를 떠올렸다. 최 이사에게 “옥자처럼 귀엽다”며 바로 현지 돼지 소리 채집에 나섰다. 뉴질랜드국립동물원에 가 하마와 코뿔소 소리도 함께 녹음했다. 옥자의 큰 체격을 고려한 채집이었다. 채집부터 녹음까지 작업 기간만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이 걸렸다.
뉴질랜드에서 돼지 소리 채집 작업이 이뤄졌다면, 한국에선 사람 목소리 녹음 작업이 진행됐다. 봉 감독은 옥자 소리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길 원했다. 미자 등과 교류할 때 인간적인 소리를 내고 싶어서다.
봉 감독은 최 이사에게 배우 이정은을 추천했다. 최 이사는 “이정은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며 웃었다. 이정은 ‘옥자’의 컴퓨터그래픽(CG)가 완성되지 않았던 지난해 12월에 상상에만 의존해 첫 녹음 작업을 했다. 숨을 들이마신 뒤 킁킁 소리를 내야 하는 데 특히 애를 먹었다. 호흡량이 달리기도 했지만, 숨을 들이켜면서 소리를 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3~4시간씩 거친 돼지 소리를 내다 보니 체력도 금세 떨어졌다. 이정은은 CG가 완성된 후인 지난 1월 추가 녹음을 끝냈다. 옥자가 산에서 내려오다 밤송이 가시에 찔려 앓는 소리 등이 이정은이 낸 목소리다. 옥자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장면에서 내는 소리는 실제 돼지 소리다.
“’왜 나한테만 X랄이야!’” ‘괴물’ 비명 나오기까지
최 이사는 봉 감독 영화의 ‘음향 공장장’이다. 봉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음향 작업을 도맡았다. 봉 감독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최 이사는 17년 전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극중 아파트 지하 배관이 있는데, 그 배관 소리를 변희봉 선생님 대사에 맞춰 다르게 내달라는 거예요, 나 참.” 최 이사는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다”며 웃었다.
음향 감독으로서 제일 어려운 일은 “감독의 상상을 소리로 객관화는 일”이다. 봉 감독의 ‘괴물’(2006)과 ‘설국열차’의 작업이 특히 고됐다. 세상에 없는 실체의 소리를 감독의 주관에 의지해 소리를 조합하고, 관객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설국열차’에서 열차 소리에 원숭이와 돼지 울음 소리를 섞어 썼다. 동물의 고음 비명을 넣어 생명력을 주고 비극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최 이사에 따르면 봉 감독은 ‘괴물’에서 강두(송강호)가 환경 오염으로 돌연변이가 된 괴물을 쇠파이프로 찔렀을 때 포효하는 소리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 썼다. 그러고 나선 다음과 같은 요구를 했다고 한다.
“‘X발 (너희 오염물질 먹고 나도 몸이 변형돼 이렇게 사는) 나도 피해잔데, 왜 나한테만 X랄이야!’라며 쓰러지는 소리를 만들어주세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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