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오늘날 우리에게 딱 맞는 의사소통 도구다.” 전 세계 7억명의 일상을 파고든 인스타그램에 대해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32)은 이렇게 말했다. 즉석이라는 뜻의 인스턴트(instant)와 전보를 보낸다는 뜻의 텔레그램(telegram)을 합친 이름에 걸맞게, 인스타그램은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어 공유할 수 있는 사진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다. 필요한 건 스마트폰 뿐이다.
사진광, 창업에 나서다
1983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난 시스트롬은 어릴 적부터 사진광이었다. 장난감보다 카메라를 좋아한 그에게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마다 카메라를 선물로 사줬다. 고등학교 때는 사진 동아리 활동을 했고 스탠퍼드대학 3학년 때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 가 사진을 공부했다. 대학에선 경영과학과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대학시절엔 틈틈이 웹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교클럽 회원들이 파티 사진을 공유하도록 한 ‘포토박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이 때 처음 만났다. 2004년 당시 사진 공유기술을 개발 중이던 저커버그는 시스트롬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시스트롬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고 훗날 둘은 한 회사의 동료가 된다. 시스트롬은 이후 트위터의 전신인 오데오에서 인턴생활을 거쳐 졸업 후 구글에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2년 만에 그만 둔 시스트롬은 구글 출신들이 만든 스타트업 넥스트스톱에 합류했다. 여행장소를 추천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였다. 하지만 또 사표를 내고 자기만의 사업을 결심한다.
시스트롬은 27살 되던 2010년 같은 대학의 브라질 출신 개발자 마이크 크리거와 함께 버븐(burbn)을 만들었다. 특정 장소에 접속했다는 정보와 함께 사진을 공유하는 서비스였다. 그들은 버븐에 체크인, 일정짜기, 포인트 적립, 게임 등 다양한 기능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이렇게 복잡한 프로그램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버븐은 결국 실패작이 됐다. 시스트롬은 심기일전해 쓸데없는 기능은 모두 덜어내고 오직 한 가지 기능, 사진 공유에만 집중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페이스북은 왜 인스타그램를 원했나
인스타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함이다. 게다가 아름답다. 인스타그램의 사진이 널리 공유될 수 있는 건 게시된 사진들이 모두 예쁘기 때문이다. 비결은 ‘필터’다. 아이디어는 당시 여자친구로부터 얻었다. 시스트롬이 여자친구와 함께 멕시코로 휴가를 갔는데, 그녀는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길 꺼려했다. 자신이 더 예쁘게 나온 사진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시스트롬의 머릿속을 스친 게 필터였다. 단점은 가려주고 여러 효과를 덧입혀 사진을 보정하는 것이다. 시스트롬은 이 기능을 바로 인스타그램에 적용했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진을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열광했다. 인스타그램은 출시하자마자 1년도 안돼 1,0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끌어 모았다.
2012년 4월 실리콘밸리에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퍼졌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 인수를 발표한 것이다. 인수자금은 무려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페이스북이 사들인 회사 규모 가운데 가장 큰 것이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업 인수합병(M&A)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인스타그램은 당시 가입자가 3,000만명에 육박하긴 했지만 직원수가 시스트롬을 포함해 13명에 불과한 신생 기업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과연 인스타그램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수익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인스타그램의 가치는 5억달러 정도로 추정됐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에 눈독을 들이는 또 다른 기업인 트위터보다 2배 높은 인수자금을 제시했다. 게다가 트위터는 전액 주식을 제안한 반면 페이스북은 현금 3억달러도 포함시켰다. 인수 뒤에도 독립 경영을 원하는 시스트롬을 위해 인스타그램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보장했다.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가 ‘신의 한 수’임을 증명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수익모델에 대한 비판은 2015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의 모든 광고주에게 페이스북의 광고 플랫폼을 개방하며 사라졌다. 페이스북은 가입자의 국가, 성별, 나이 등 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광고를 해왔는데, 인스타그램에서도 이게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3월 기준 인스타그램은 100만개의 광고주(기업)를 확보했고, 비즈니스 계정도 800만개를 기록했다. 이용자의 80%가 비즈니스 계정을 팔로어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인스타그램은 마케팅 창구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가져온 변화
인스타그램의 기업가치는 2014년 이미 350억달러로 평가 받았다. 지난해 포브스는 인스타그램이 독립회사였다면 500억달러의 가치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정작 시스트롬은 “기업가치가 얼마인지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기업가로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스트롬의 자산도 페이스북 주식 가격이 뛰면서 11억달러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세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한다’는 인스타그램의 슬로건이 그대로 현실이 됐다. 시스트롬 역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족, 음식, 취미 등 일상을 포착한 사진들을 올려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사들도 인스타그램을 소통 창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사람은 미국 가수 셀레나 고메즈로 1억2,500만명에 달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시태그’라는 새로운 문화도 생겼다. 해시태그는 우물 정(#)자 기호 뒤에 특정 단어를 붙인 표기법이다. 이용자들은 해시태그를 통해 쉽게 이미지를 검색하고 관련 이슈도 모아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이용자수가 1,000만명을 돌파한 한국에서는 인스타그램이 해시태그와 만나 신조어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X스타그램’이다. 예컨대 맛있는 음식을 찍은 사진엔 ‘먹스타그램’ ‘맛스타그램’ 등을 붙여 사진을 공유한다. 먹스타그램은 2014년 국립국어원이 신어로 선정할 정도로 널리 쓰이는 말이 됐다. 이 밖에 ‘술스타그램’ ‘애스타그램’ ‘럽스타그램’ 등 변주는 다양하다.
이처럼 세상에 나온 지 7년도 안 된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 소통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보다 쉽게 현재를 기록할 수 있게 됐고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자의 취향과 유행을 파악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마케팅이 필수가 됐다. 하지만 시스트롬에게 이 같은 변화는 아직 시작일 뿐이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 팀에게 인스타그램이 앞으로 얼마나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주 물어봅니다. 직원들은 보통 현재 이용자의 두 배 이상의 숫자를 답하죠. 하지만 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스타그램을 쓰지 않는 대부분이 결국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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