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후보자 춘천 떠나며
도종환 시 인용해 소회 밝혀
“현명한 사람들은 다 가기 싫다고 했고, 다정한 사람들은 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길을 떠난다.”
김명수(58ㆍ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후보자가 25일 춘천지법을 떠나며 남긴 일성이다. 사법개혁에 대한 각오와 부담감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이날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누구나 힘들어하는 길이기에 어쩌면 더 의미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전혀 다르지만, 여러분을 믿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르지만 나서보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 말 속 ‘현명한 사람’은 대법원장 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시환 전수안 전 대법관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정한 사람’이라 표현된 김 후보자 지인들이 ‘가지 말라고’ 한 대목은 사법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직 판사인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는 “전직 대법관을 지낸 분들이 사양할 만큼 어려운 자리기에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것을 빗대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달리 해석하면 사법개혁이라는 과업을 충실히 완수하겠다는 김 후보자의 각오로도 읽힌다. 법원 안팎에는 양승태 현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은 김 후보자가 법원을 충분히 통솔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또 소수의 사법부 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된 사법행정권을 전국법관회의 등에 환원하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지 못할 경우 법원 내부 반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가 인용한 시구처럼 ‘누구나 힘들어하는 길’인 셈이다. 그럼에도 ‘더 의미 있는 길’이라 여기고 ‘나서보겠다’는 게 김 후보자의 복심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김 후보자는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인사와 사법행정 권한을 판사들에게 위임하고 자율적으로 업무 분담을 하도록 한 파격 행보로도 유명하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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