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테러대응국은 인도령 카슈미르의 최대 무장조직 히즈불 무자히딘(이하 히즈불)을 ‘외국인 테러그룹’으로 공식 지정했다. 히즈불 최고 사령관인 사이드 살라우딘을 ‘외국인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나온 발표다. 살라우딘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일은 지난 6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방미기간에 맞춰 공표된, 인도 정부에는 더할 나위 없는 ‘외교적 선물’이었다. 하지만 자치ㆍ독립을 추진해 온 카슈미르인들에게는 또다시 고난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히즈불은 사실상 유일한 카슈미르 고유의 무장 단체로 카슈미르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인도ㆍ파키스탄ㆍ중국령으로 나뉘어 분리 통치되고 있는 카슈미르의 주민 대다수는 그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온전한 독립을 열망해 왔으나, 최근에는 친(親) 파키스탄으로 분류되는 히즈불에도 폭발적인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제 “지난해 7월 히즈불 사령관 부르한 와니가 인도군과 교전 중 숨진 전후로 카슈미르 젊은이들의 무장단체, 특히 히즈불 가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도령 카슈미르인 잠무카슈미르주 스리나가르 출신의 30대 사업가 사비르(가명)는 히즈불과 일절 연관이 없는 평범한 시민임에도 “그들(히즈불)과 카슈미르인들은 한 길을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히즈불 조직원의 장례식은 카슈미르인들 히즈불 지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사령관 와니의 장례식에는 5만여명이 몰려들었고, 지난 13일 사망한 메흐무드 가즈나비 사령관 장례식에도 최소 3,000명이 모여 “아자디(자유)”를 외쳤다. 인도군에 의해 강간과 고문, 살해 등 폭력을 경험해 온 카슈미르인들이 히즈불 대원의 장례식에 참석함으로써 자신들의 분노를 집단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히즈불의 세력이 이처럼 커진 것은 역설적으로 독립파인 카슈미르인들이 정치권에 대한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1987년 주의회 선거는 중요 기점이 됐다. 당시 친인도계 정당 내셔널 컨퍼런스(JKNC)가 부정선거로 주 정부를 장악한 이후 2년 만에 히즈불이 활동을 개시했고 또다른 카슈미르 분리독립 무장조직인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도 같은 해 무장 저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이 1994년 비교적 짧은 기간 끝에 무장 투쟁을 접자 카슈미르 고유의 무장단체로는 사실상 히즈불만 남았다. 그외 라슈카레 토이바(LeT)와 같은 무장조직도 있으나 일찌감치 ‘테러단체’로 낙인이 찍혔다. 카슈미르인들은 점차 정치적 해결책에 대한 회의 등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히즈불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히즈불은 미국의 위협과 더불어 조직 내부 또는 지역에서도 거대한 장애물을 맞닥뜨리고 있어 미래를 낙관하기만은 어렵다. 극단주의 무장조직 알카에다가 최근 히즈불 출신 인물을 내세워 이곳에서 적극 활동하며 카슈미르 독립 투쟁의 명분을 흐리고 있어서다. 지난달 27일 알카에다 카슈미르 지부의 새 지도자로 임명된 자키아 무사 전 히즈불 사령관은 “우리의 활동은 민족주의나 국가 건설도 유엔 결의안 이행을 위한 것도 아니다”라고 공표했다. 히즈불이 무장 저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념으로 표방해 온 민족 자결권 등을 전면 부정한 셈이다. 히즈불과 카슈미르인들은 이제 인도 정부와의 싸움뿐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알카에다와 한데 묶여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한 새로운 투쟁에 돌입했다.
이유경ㆍ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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