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증거 차고 넘쳐” 기선 제압
최순실 측은 진술 번복하며 반격
이례적 법정 프리젠테이션 공방
수사기록만 3만 쪽, 전현직 장차관 포함 59명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세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4개월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재판 시작 전부터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시작부터 반전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질 때만 해도 이 부회장은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비슷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씨의 강요ㆍ직권남용 피해자로 묶여있었다. 그러나 11월 꾸려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첫 공식수사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ㆍ보건복지부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올 1월 피의자 신분으로 첫 조사를 받은 이 부회장은 한 달 만에 구속됐다.
특검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며 기선을 제압했다. 청탁이 오간 핵심 근거로 대통령에게 독대 직전 보고된 삼성 현안 관련 ‘대통령 말씀자료’와 ‘사초’ 수준으로 독대 내용이 상세히 적힌 안종범 수첩을 재판 초기부터 꺼내 든 것이다.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해당 자료를 직접 작성한 윤인대 전 청와대 행정관은 “말씀자료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만든 ‘행정관 창작품’”이라고 증언해 특검을 궁지에 몰았다.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에 적힌 내용이 독대 때 오간 대화를 직접 뒷받침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최순실씨 측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씨가 독일에서 말 소유권이 삼성으로 기재된 것을 보고 화가 나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한 걸 들었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가 이를 재판정에서 뒤집기도 했다.
정유라씨의 특검 구원 등판은 모두를 놀라게 한 깜짝 반전이었다. 정씨는 당초의 불출석 의사를 뒤엎고 지난달 12일 새벽 특검에 이동할 차량을 요청해 변호인 몰래 법정에 전격 출석했다. “삼성이 (말 교환을) 당연히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말을) 내 것처럼 타라고 했다” 등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정씨의 법정 진술은 특검의 막판 공세에 힘을 실었다. 막바지 양측의 프레젠테이션(PT) 쟁점 공방은 국내 재판에선 이례적인 일로 기록됐다.
숱한 극적 장면을 연출한 이 부회장 재판은 구속기소 178일 만에 일단 특검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양측 모두 항소 의지를 밝힌 만큼 2라운드 격돌은 불가피하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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