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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맨스플레인, 핵심 찌르는 한 단어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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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맨스플레인, 핵심 찌르는 한 단어가 세상을 바꾼다”

입력
2017.08.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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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한국에 와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법을 배워오겠다고 말했다”고 인사한 리베카 솔닛. 그는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한국민들이 비법을 전수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창비 제공
“친구들에게 한국에 와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법을 배워오겠다고 말했다”고 인사한 리베카 솔닛. 그는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한국민들이 비법을 전수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창비 제공

맨스플레인(mansplain) ;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것으로 ‘내가 많이 안다’며 설명을 가장해 남성이 여성들을 훈계하는 행위.

이처럼 유사 이래 만연했으나 콕 짚어 지적할 수 없었던 젠더 불평등의 핵심을 찌른 말이 또 있을까. 예술, 환경, 인권 등 전방위적 주제를 다루는 미국 출신 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이 2010년 한 칼럼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뒤, 같은 해 뉴욕타임스는 이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재작년에는 옥스포드 영어사전 온라인판에도 등재됐다. 자신이 ‘맨스플레인’ 당한 사례를 조목조목 나열했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창비)는 우리나라에서도 페미니즘 도서 열풍의 신호탄이 됐다.

절묘한 단어 하나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그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남자들은…’의 후속편 격인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 출간 기념이다. 솔닛은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독자들도 만난다. 방한을 맞아 솔닛이 이전에 쓴 ‘어둠 속의 희망’(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 개정판도 출간됐다.

25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사옥에서 만난 솔닛은 “이번에 낸 세 권의 책은 ‘걷기’에 관한 책이다. ‘걷기의 인문학’이 직접적이라면 나머지 두 권은 (정신적으로) 경험하고 여기저기 누비는 과정을 다루는, 우리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탐색해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영어권에서 ‘걷기’는 건강함, 건전함과 직결된다. 성과 사랑에도 연결된다. 걷기의 배경인 도시는 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장소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촛불집회와 탄핵이 미국에서 일어나길 바란다”고도 했다.

-페미니스트 신구 세대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큰 틀에서 이견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2015년 한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강남역 사건), 인도 버스 집단강간, 미국 대학캠퍼스 내 강간 등을 향해 젊은 여성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했고,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역량을 활용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일이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실천 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언어와 도구를 가지고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전략을 구사한다. 인종이나 성차별, 성적지향에 대한 문제들이 어떤 지점에서 교차하는지를 포착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책에서 언급하는 ‘강간의 문화’를 놓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백악관은 강간 문화, 여성혐오가 존재하는 곳이다. 전통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해 있다. 기독교 우월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남성성을 강화하고자 과거의 성역할로 여성을 보수화시키려는 게 현재의 백악관이다. 트럼프는 ‘여성의 성기를 만졌다’는 말을 했는데도 당선됐다. 그로테스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여성 차별을 유형화, 구체화하는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신조어를 만들 계획은 없나.

“사실 내가 맨스플레인 단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2008년 한 여성 블로거가 내 에세이에 대한 답글에서 사용했다. 나는 최근 ‘프리빌리비어스(priviliviousㆍ특권(privilege)+망각하는(oblivious)’라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가하는지 전혀 모르는 현상을 지적하는 신조어를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개념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이 대중적으로 쓰일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새로운 단어들이 대두하리라고 생각한다.”

반전,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즘도 인권운동의 일부분이라고 본다”며 “전쟁, 가정폭력, 빈곤, 불평등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활동도 그 연장선이다. 신념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과 영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반전,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즘도 인권운동의 일부분이라고 본다”며 “전쟁, 가정폭력, 빈곤, 불평등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활동도 그 연장선이다. 신념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과 영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창비 제공

-페미니즘 운동이 급속해질수록, 이에 대한 반발, 여성혐오 현상도 급속하게 강화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상징적인 예다.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낯설고 기이하게 들리지 않는다. 미국도 그러하니까. (일부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며 페미니즘이 실제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게임이나 포르노가 여성혐오를 강화시키고, 여성들은 남성이 필요 없다는 쪽으로 가서 양쪽의 유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출산ㆍ저성장 사회에 접어들면서 여성들은 오히려 해방으로부터 멀어진 것 같다.

“미국도 여성들에게 출산과 양육, 일 모두를 부담지우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보육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남편이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여성이 불공정한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정의롭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미니즘 맥락 속에서 여성이 평등한 관계를 쟁취해난다면 여성이 출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걷기의 인문학’ 개정판 서문에서 한국의 촛불시위를 언급했다.

“정치학자 조너선 셸은 ‘비폭력운동은 20세기에 핵무기에 대응하는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에서도 비폭력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연대와 결집의 순간, 사람들 간의 차이가 사라지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이 역사적 순간이자 변혁의 순간이 된다. 한국은 촛불시위로 성공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는데,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페미니즘 운동이 현재 젠더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충분한가.

“말했듯이 인간해방 운동의 한 부분이 페미니즘이다. 여성의 문제에는 동성애 문제, 경제불평등 등과 교차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페미니즘이 단독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불충분할지 모르지만 제반 문제와 연결시켜 연대해 접근하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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