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펭귄마을에 무슨 일이

4년 전 달동네 다름없던 곳
주민들 힘 모아 텃밭… 폐품 담장
정크아트 전시장으로 탈바꿈
작년에만 20만명 찾아 유명세
관청이 도심재생산업 내세워
땅ㆍ집 수용… 주민들 한숨만
펭귄마을 주민들은 이웃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버린 벽시계들을 모아 빈 집 벽에 장식했다. 주민들은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타임슬립이라도 한 듯 1970~80년대 풍경이 펼쳐졌다. 다닥다닥 붙은 기와 지붕과 녹이 슨 철제 대문, 고장 난 벽시계가 촘촘히 매달린 벽, 식탁이라곤 달랑 하나뿐인 허름한 주막까지. 물들지 않은 역사 그대로의 모습이 촌스럽지만 정겹고 순박했다. 갈라진 담벼락 곳곳엔 생활 잡동사니들을 소재로 한 공공 미술 작품과 그림, 벽화 등이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최근 몇 년 새 광주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 이야기다. 무릎이 아픈 마을 어르신들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펭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식구는 주민들 표현대로라면 “대충 45가구에 몇 십 명 정도다.” 치솟는 집값을 피해 광주천 남서쪽, 거기서도 두 산(사직산ㆍ양림산) 능선 자락까지 흘러 들어온 주민들은 펭귄처럼 모여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곳에서 그 명명의 연원이 됐던 원래 주민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행정당국이 도심재생사업을 앞세워 주민들의 땅과 집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몇 십 명쯤 될 것”이라던 마을 식구들은 현재 세입자를 포함해 6가구 11명뿐이다. 그나마 이들마저도 조만간 집을 비워주고 마을을 등져야 할 처지다.

24일 펭귄마을에서 만난 박모(83)씨는 “기껏 주민들이 손수 동네를 꾸미고 가꿔서 이름을 띄워놨더니, 관(官)에선 주민들을 내쫓고 입주작가라는 외지사람들을 들이려고 한다”며 “며칠 전에도 10월 말까지 집을 비우라고 하길래 기가 막혀서 ‘내가 죽으면 집을 비워주겠다’고 했다”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펭귄마을 골목길 담벼락에 주민들이 직접 쓴 시와 버려진 접시를 활용해 만든 설치 작품들이 내걸려 있다.

4년 전만해도 펭귄마을은 달동네나 다름없었다. 화재로 폐허가 된 집터에 쓰레기가 쌓여 마을이 흉물스럽게 변하자 주민들이 보다 못해 수를 냈다. 불 난 집터를 텃밭으로 만들고 찌그러진 양은냄비, 타이어, 액자 등 생활 폐품들로 길이 196m에 달하는 담장을 꾸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가난한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마을을 단장했다”고 했다. 허름했던 골목길이 정크아트 전시장으로 탈바꿈하자 공예와 미술 분야의 가난한 예술가들도 하나 둘씩 찾아와 둥지를 틀었다. 2014년부터 펭귄마을은 ‘시간을 추억하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세를 탔다. 작년 한 해에만 20만여 명이 마을을 찾았다.

펭귄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옛 추억이 담긴 물건들로 꾸며진 골목길을 돌아보고 있다.

그러나 마을의 변신은 되레 주민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2011년 펭귄마을 일대를 주거환경개선정비구역(소공원)으로 지정만 해놓고 뒷짐을 지다시피 했던 남구가 2014년부터 마을 이주계획을 알리고 토지 수용에 나선 것이다. 남구는 지난해 1월 마을 일대를 문화공원지구로 확대ㆍ지정한 데 이어 5월엔 광주시가 35억원을 들여 내년까지 이 일대(4,176㎡)를 주민주도형 공예특화거리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시가 펭귄마을 일대 가옥과 폐가 등을 리모델링해 공예 입주작가와 창업 희망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히면서 주민 이주를 부채질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공예특화거리 개발대상지에 편입된 25가구 모두 관이 제시한 토지수용협의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주민주도형”이라던 도심재생사업이 주민들을 내쫓는 꼴이 된 셈이다. 주민들은 “다 차려 놓은 밥상에 관이 숟가락을 얹더니 밥상마저 빼앗았다”, “이게 관이 주도해 가난한 주민들과 작가들을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 ‘관트리피케이션’이 아니면 뭐냐”고 언성을 높였다.

구청의 막무가내식 이주사업도 주민들의 속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을을 떠난 한 주민은 “(구청에서) 이주비 신청서를 반려하더니 나한테 세입자를 내보내라고 했다”고 황당해 했다. 한 세입자는 “집을 안 비워줬더니 구청이 집에 말도 없이 전기와 수도 공급을 끊은 적도 있다”고 새된 목소리를 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주민들은 “괜한 짓을 했다”며 씁쓸해 했다. 어린 손자 두 명을 홀로 키우고 있는 김모(72)씨는 “내 집 내주고 월 25만원짜리 사글세 방으로 나앉게 됐는데, 이게 도대체 누굴 위한 도심재생사업이냐”며 “우리가 쓸데없는 짓을 했나 싶고, 하소연할 곳도 없어 겁만 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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