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독립한 브라질의 한 주였던 시스플라티나 지역 주민들은 정서적으로 브라질보다 남부 아르헨티나와 가까웠다. 그 지역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브라질 나머지 영토와 달리 16세기 이후 줄곧 스페인 식민지였다. 1811년 독립전쟁을 일으켜 지배자들을 몰아내고 연방연합을 설립했다가, 그 영향력을 우려한 포르투갈의 침략으로 5년 만에 병합된 감정이 그들에겐 남아 있었다. 1825년 8월 25일, 시스플라티나 주민 지도자(이른바 동방의 33인)들이 당시 리오데라플라타 합주국(현 아르헨티나) 영토 안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에 선전포고했고, 1825~28년의 양국 전쟁이 시작됐다.
초기 전세는 브라질이 우세했지만, 아르헨티나 해군력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한때 시스플라티나를 넘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진격했던 브라질 군대는 퇴각을 거듭하며 자국 본토까지 아르헨티나군에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전쟁은 1828년 개입한 영국과 프랑스의 중재로 2년 뒤 끝이 났다. 브라질제국 독립 황제 페드루 1세는 신임을 잃고 왕위에서 쫓겨났고, 시스플라티나 영토를 잃었다.
우루과이(공식 명칭 우루과이동방공화국)가 그렇게 독립했다. 우루과이는 독립의 보은과 감사의 의미로 아르헨티나 국기 중앙에 놓인 5월의 태양을 자국 국기 좌측 상단에 얹었다. 수리남에 이어 남미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작은 우루과이는, 국제투명성기구가 인정하는 가장 부패가 적은 남미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350만 명 인구의 약 95%가 유럽계로 88%가 백인이다. 농축산업 위주의 산업으로 제조업이 썩 발전하진 못했으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와 서비스 산업, 특히 ‘남미의 스위스’라 불릴 만큼 금융업이 발달해 1인당 국민소득이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남대서양 연안 푼타델에스테 등도 국제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우루과이는 지금도 아르헨티나와는 맹방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브라질과는 썩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축구 강국인 남미 3국의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19세기 저 역사의 흔적이 아직 관중들의 함성과 표정 속에서 엿보이기도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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