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블랙리스트 공범 아니다” 판단
‘김기춘 재판부’ 논리 인용한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화ㆍ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보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당시 청와대 기조나 분위기만으론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취지다. 박 전 대통령 측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이 관여한 정황이 없다’고 언급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1심 선고 판결문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어 검찰과 법리 공방이 뜨거울 전망이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당시 청와대 기조나 분위기가 (블랙리스트 혐의) 유죄 판결의 증거가 될 순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보고 받거나 지시 받은 바 없다는 건 관련자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범이 아니라고 본 김 전 실장의 1심 재판부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 전 실장 1심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몸통을 박 전 대통령이 아닌 김 전 실장으로 지목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 내용이 어떤 절차와 방식을 거쳐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이 종북 성향 서적의 도서관 비치 문제 등을 직접 언급하고 지시한 것을 두고서도 지시 자체가 위법ㆍ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사직 강요’혐의에 대해선 다소 수세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변호인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형사재판 대상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 전 국장에 대해 ‘아직도 그 사람 이 자리에 있냐’고 했다는 말은 직접 들은 사람 한 명도 없고 전부 전언으로만 증언하고 있다”며 “이 부분은 추후 증인신문 통해 무죄를 밝히겠다”고 방어했다. 김 전 실장 1심 재판부도 이 혐의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했다.
반면 검찰은 이날 김소영 전 청와대 문체비서관의 녹취록을 토대로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인 ‘문화예술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 문건’등이 모 전 수석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반박하며, 혐의 입증에 주력했다.
당초 다음달 14일로 예정됐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 전 대통령의 대면은 무산됐다. 이날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이 김 전 실장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데 동의하면서 검찰도 증인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김 전 실장의 건강상태도 안 좋고 진술조서 등을 검토했는데 굳이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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