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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25주년] ‘이웃사촌’과 ‘미운 사촌’ 사이…애증의 25년

입력
2017.08.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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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열병식ㆍFTA 체결땐 이웃사촌

마늘ㆍ동북공정 갈등땐 미운 사촌

한국과 중국은 지난 25년간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인적ㆍ물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확대되는 동안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이었지만 때로는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은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과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한국전쟁에서 총부리를 겨눴던 양국이 39년만에 냉전의 세월을 뒤로하고 평화공존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사전 양해를 구했고,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 대만과 단교했다. 1997년 2~4월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상당히 우호적인 역할을 했다.

그림 125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이상옥(앞줄 왼쪽) 외무장관과 첸치천(앞줄 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림 125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이상옥(앞줄 왼쪽) 외무장관과 첸치천(앞줄 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대 초에는 마늘분쟁과 동북공정으로 한중관계가 연이어 시험대에 올랐다. 2000년 6월 한국이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대폭 인상하는 세이프 가드 조치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전면중단했다. 한국이 관세율을 기존 수준으로 낮추면서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중국의 불합리한 무역보복에 무릎을 꿇은 사례로 남았다. 중국은 2002년부터 5년간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한국은 고구려역사재단ㆍ동북아역사재단 설립 등으로 역사왜곡에 맞섰다.

2003년 8월 출범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각국의 치열한 이해관계를 중재했다. 2005년에는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북핵 폐기 로드맵으로 일컬어지는 9ㆍ19 공동성명도 채택됐다. 그러나 북한의 거듭된 합의 파기로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한중관계는 박근혜 정부 출범과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등장 이후 역대 최고를 구가했다. 시 주석은 집권 이듬해인 2014년 7월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고, 2015년 9월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서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12월에는 한중 간 자유무역협정(FTA)도 공식 발효돼 경제 교류ㆍ협력이 더욱 심화했다.

하지만 역대 최고로 평가되던 한중관계는 1년뒤 최악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7월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안보이익 훼손을 이유로 전방위 사드 보복을 감행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고,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류 열풍도 직격탄을 맞았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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