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년 전 광주로 갑시다.”
문재인 대통령이 5ㆍ18민주화운동 특별조사를 지시한 23일 오후 5ㆍ18 유가족 추혜성(61)씨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대사를 빗댄 것이었지만, 추씨는 “이제 이 말은 시대의 명령이 됐다”고 평가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5ㆍ18기념식 때 5ㆍ18진상규명을 약속했던 문 대통령이 이날 ‘실행’에 옮기자 광주 시민들의 눈과 귀는 ‘37년 전 5월’로 향했다. 그 동안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1980년 5월 신군부의 전투기 폭격 계획이 당시 공군 조종사의 증언을 통해 알려진 게 그 단초가 됐다. “피가 거꾸로 솟고, 치가 떨린다”던 5ㆍ18 유족들은 “이번에야말로 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며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졌다.
5ㆍ18 당시 공군의 공대지 폭탄 투하 계획은 육군의 헬기 기총 사격과 한 묶음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련 단체의 분석이다. 문 대통령이 이 두 건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공군의 전투기 폭격 계획이 알려진 이후 5ㆍ18 당시 육군도 코브라(AH-1J) 전투 헬기를 동원해 광주를 공습할 계획을 세웠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육군 헬기 조종사 출신인 A씨는 이날 정수만 5ㆍ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1993년 첫 보직을 받은 항공부대에서 코브라 전투 헬기 베테랑 조종사로부터 ‘5ㆍ18 당시 코브라 전투 헬기 조종사들이 자신의 손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뽑아 유품으로 준비해 놓고 작전 대기를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A씨의 증언은 5ㆍ18 당시 코브라 헬기 2대(인원 49명)가 운용됐고, 그 임무가 ‘무력시위 및 의명 공중화력 지원’이었다고 밝힌 1980년 9월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의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는 5ㆍ18 당시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 대한 육군의 헬기 사격과도 맞물리면서 코브라 전투 헬기 공습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이 때문에 신군부의 광주 공습 계획도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 5ㆍ18 당시 광주에서 선교사로 일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1995년 증언록 ‘5ㆍ18 광주사태’를 통해 한국 공군의 폭탄 투하 계획을 제기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하는 분위기가 컸다. 당시 피터슨 목사는 “1980년 5월 당시 전남ㆍ북지역에 있는 미국인들을 수원 비행장으로 사전에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 데이브 힐 하사로부터 한국 공군이 공격의 일환으로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5ㆍ18진실규명과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5ㆍ18 당시 신군부는 광주를 사실상 ‘적국’으로 규정한 것”이라며 “헬기 사격 발포명령자와 더불어 ‘공대지 폭탄 투하 계획’을 내린 최초 명령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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