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우 원내대표는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집권여당이 된 민주당의 첫 원내 수장에 올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발했다. 하지만 탄핵 이후 갑작스레 출범한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하는 집권여당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우 원내대표의 부담도 어느 때보다 컸다. 여기에 4당 체제로 바뀐 여소야대 국회 상황 때문에 켜켜이 쌓인 현안 문제를 풀어 가기란 더욱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각종 인사 문제, 추가경정예산과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기며 우 원내대표는 지난 100일의 시간을 지나왔다. 우 원내대표의 롤러코스터 같았던 100일을 결정적 5장면으로 돌아본다.
① 재수 끝에 원내대표 고지에 오른 을지로위원장
우 원내대표는 대선 일주일 만인 지난 5월 16일 당내 경선에서 친문(재인)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홍영표 의원을 7표 차이로 제치고 원내대표에 올랐다. 경선 전 김근태(GT)계로 분류된 우 원내대표가 친문계 핵심인 홍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에 오를 것이라고 낙관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1년 전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 당시 1차 투표에서 우상호 의원에게 이기고서도, 과반을 넘지 못해 치른 2차 결선 투표에서 패한 뒤 절치부심한 우 원내대표에게 의원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다. 특히 그가 2013년부터 당 을지로위원장을 맡아 ‘을’의 눈물을 닦는 데 앞장서 온 것이 많은 의원들에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졌다는 평가였다. 우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소감을 통해 “우리와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해 나아가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알고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당 대표와 뚜벅뚜벅 나아가겠다”고 했다.
② 이낙연 총리부터 줄줄이 꼬인 인사 문제…탁현민은 진행형
우 원내대표는 취임과 함께 인사 문제라는 암초를 만났다. 야당들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청와대가 내놓는 인사마다 제동을 걸었다. 석 달 가깝게 이어진 인사 정국은 산 넘어 산이었다. 이 총리와 강 장관 인사를 해결하고 나니 이번에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문제가 줄줄이 이어졌다. 인사 정국 막바지에는 차관급인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문제까지 국회로 화살이 날아 들었다. 안경환 조대엽 후보자와 박 본부장의 사퇴로 마무리되는 듯하던 인사 문제는 다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 문제로 전운을 드리우고 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사퇴 요구를 거부한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문제도 아직 진행형이다. ‘기-승-전 탁현민’이라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다.
③ 약이 된 눈물과 우원식의 변신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의 국회 처리는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최대 현안이었다. 때문에 이를 얼마나 속도감 있게 처리하느냐는 우 원내대표의 국회 운영 능력을 검증할 가장 큰 시험대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6월 7일 국회로 넘어 온 추경안은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한 야당들의 어깃장으로 상임위에서 심사조차 돌입하지 못한 채 표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협치’를 강조하며 낮은 자세로 설득에 나선 우 원내대표는 급기야 6월 22일 국회 정상화 합의가 무산되자 “한 달 동안 참고 참으며 들었는데 너무하지 않습니까” 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다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자 야당은 “약한 척? 가지가지 한다”며 빈정거리는 어조로 우 원내대표를 공격했다. 눈물이 약이 된 것일까. 이후 야당을 향한 강성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우 원내대표는 지난달 13일 추미애 대표의 ‘머리자르기’ 발언에 대한 청와대 대리사과와 조대엽 후보자 사퇴를 끌어낸 데 이어 22일 추경안 처리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④ 추경 처리 해놓고도 욕 먹은 이유는
천신만고 끝에 추경 처리에 성공했지만, 우 원내대표는 오히려 역풍에 휩싸인다. 추경 국회 본회의 처리 당시 민주당 소속 의원 26명이 해외 출장이나 개인 일정으로 자리를 지키지 않아, 한때 정족수 부족으로 처리가 지연된 데 따른 책임이 고스란히 우 원내대표에게 돌아온 것이다. 당시 우 원내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 과격 지지층 등으로부터 원내대표 사퇴를 넘어 정계를 은퇴하라는 ‘모진’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추경 처리에 대한 공치사는 고사하고 당 안팎의 비난에 시달린 우 원내대표는 결국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로 국민 여러분들에게 사과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추경안 처리 당일 본회의에 참석했다가 정족수 부족 사태를 미리 예상하고 표결에 불참하기 위해 자리를 뜬 자유한국당의 꼼수에 우 원내대표가 쓴 맛을 본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⑤ ‘레드라인’만 밟지 않았을 뿐…한 살 터울 추 대표와 신경전
추경 후폭풍에 속앓이를 하던 우 원내대표가 며칠 지나지 않아 발끈했다. 우 원내대표가 지난달 25일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작심한 듯 쓴소리를 내뱉은 것이다. 우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추경 통과 내용에 대해 SNS 등에서 누더기니, 반토막이니 폄훼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기에 동의할 수 없다. 당 내외의 왜곡된 평가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욕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당 내외라는’ 표현 때문에 우 원내대표가 추미애 대표를 겨냥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추 대표가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추경과 관련, “야당의 반대로 공공일자리의 핵심인 중앙직 공무원 일자리가 사실상 반토막이 됐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1957년생 우 원내대표와 1958년생 추 대표. 한 살 터울인 당 투톱의 신경전은 이 문제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달 추 대표의 ‘머리자르기’ 발언에 대한 청와대 대리사과 때 ‘추미애 패싱’ 논란이 불거진 것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심지어 우 원내대표와 추 대표는 직접 대화 대신 필담을 나눈다는 괴소문까지 흘러 나왔다. 양측은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우 원내대표 취임 100일간 추 대표와의 신경전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을 뿐 당 관계자들의 마음을 졸이기에 충분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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