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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영의 TV다시보기]'을도 아닌 병' 독립PD들의 절규 들리나요?

입력
2017.08.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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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는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촬영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한국독립PD협회 제공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는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촬영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한국독립PD협회 제공

'자격요건: 10년차, 근무시간: 탄력적, 근무조건: 차량 소지 및 운전가능자 우대'

언뜻 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구인광고다. 과연 그럴까. 10년차 경력자를 구한다는 건 현장에서의 빠른 판단과 책임을 요하는 전문인력을 말한다.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는 당연할진 데 이상하게도 근무 수당이나 정확한 근무 시간이 게재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차량 소지를 원한다면 이동이 잦다는 얘기인데, 4대 보험 언급은 없다. 과연 누구를 뽑으려는 광고일까. 외주제작사가 원하는 독립PD의 채용 조건이다.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독립PD를 뽑는 조건은 매우 간결하다. 여기엔 '업계 관행'이라는 무자비한 현실이 숨어있다. 탄력적이란 근무시간은 '마감 기일까지 일을 마쳐야'하기 때문에 '밤샘 근무는 필수’란 뜻이고, 차량 소지자 우대에는 유지비 등은 '각자 알아서'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내 독립PD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주제작사들은 제작비를 아끼고 아껴도 수익을 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너희 아니어도 외주제작사는 많다"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 등 방송사의 '갑질'에 외주제작사끼리 경쟁해야 하는 구도이다.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독립PD들이다. 방송사가 "주는 대로 받고, 달라는 대로 줘야" 전파를 탈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달 고 박환성〮김광일 독립PD는 EBS '프라임다큐-야수와 방주'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현지 일정이나 통역 등을 전담하는 코디네이터도 없이 낯선 땅에서 직접 운전하다 변을 당했다. 사고 차량 뒷좌석에는 포장을 뜯지도 못한 햄버거와 음료가 발견돼 돈과 시간에 쫓긴 두 사람의 행적을 고스란히 드러났다. 독립PD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두 독립PD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라고 주장한다.

고 박 PD는 남아공으로 떠나기 전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지난해 8월 EBS에 2부작 '다큐프라임' 제작비로 2억1,000만원을 요청했지만, 1억4,000만원을 지원받는데 그쳤다. 나머지는 그가 한국전파진흥협회의 제작지원사업에 공모해 받은 1억2,000만원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EBS는 정부지원금 가운데 송출이나 편성 등의 명목으로 ‘간접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PD는 남아공으로 출국하기 전 동료 PD들과 함께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사이의 제작비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려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망자의 염원이 통한 것일까. 한국독립PD협회는 지난 4일 '방송 불공정관행 청산을 위한 특별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도 방송사-외주제작시장에 대한 실태조사에 돌입했다. 정부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발로 뛰는 방송외주제작 관련 노동자(독립PD, AD, 보조작가, 기술직 노동자 등)도 만나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촬영 도중 쓰러지는 것도 내 탓이오, 죽는 것도 내 탓"이라던 한 독립PD의 말을 우리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때다.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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