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방송사의 부당 해직과 징계 문제 등을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 반영하겠다며 ‘공영방송 정상화’ 의지를 거듭 강하게 밝혔다. 2012년 파업 이후 부당 해고와 대량 징계를 남발한 MBC를 사실상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어, 오는 11월로 예정된 KBS MBC SBS 재허가 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번 방통위의 정책이 내부 구성원으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KBS와 MBC 경영진에 적잖은 압박이 될 전망이다.
지상파는 최대 5년까지 재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지상파 3사는 2013년 재허가 심사에서 4년 재허가를 받았다. 당시에도 MBC는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부당 해고와 징계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이 문제가 재허가 심사에 큰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통위가 22일 대통령 업무 보고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공영방송 개혁 의지와 구체적 정책 방향까지 제시한 만큼 재허가 심사가 형식적인 절차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일부 방송사에 대해 재허가 취소 및 조건부 재허가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004년 인천 경기 서부 지역 지상파 방송인 경인방송(OBS 경인TV의 전신)이 재허가 추천이 거부돼 방송이 중단된 사례도 있다.
방통위는 올해 지상파 재허가 신청 안내를 고지하며 심사 항목들을 제시했는데, 이들 중 ‘방송의 공적 책임ㆍ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ㆍ사회ㆍ문화적 필요성’과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ㆍ편성ㆍ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등 공영방송의 공공성 문제와 직결된 항목에 대해서는, 총점에서 재허가를 충족하는 점수를 받더라도 해당 항목의 평가점수가 배점의 50%에 미달하는 경우 ‘조건부 재허가’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도 이날 대통령 업무 보고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방송사의 공적 책임 차원에서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는지 등을 점검하고 이를 재허가 조건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 부과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며 “최소한 해직자 문제에 대해 사측에서 성의를 갖고 해결해달라는 의견은 심사위원들이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방통위의 이번 정책이 또 다른 언론 통제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 경영진과 구성원의 사이의 갈등이 이전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에서 빚어진 만큼, 내부적 해결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의 독립성은 보도와 제작 과정에서 외부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지, 부당 노동 행위를 강요하고 편파 왜곡 보도를 지시한 경영진에겐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BC의 경우 보도 제작 등 전 업무 영역에서 제작 거부가 잇따라 이미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결방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향후 총파업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KBS에서도 기자들이 제작 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등 경영진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방통위가 규제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만큼, 이번 정책이 언론ㆍ시민단체 등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관계자는 “다소 늦었지만 방통위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개혁 의지를 보여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MBC에 대한 당국의 철저한 감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방통위는 최근 독립PD의 사망으로 드러난 외주제작시장의 불공정거래, 홈쇼핑사의 납품업체에 대한 제작비 떠넘기기 등 방송통신시장의 고질적인 갑-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실태 조사를 한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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