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회창 전 총재는 ‘3김’과의 얽힌 일화와 함께 신랄한 평가도 했다. 그는 정치에 발을 딛고 있는 내내 ‘3김 정치 청산’을 화두로 삼았다.
“YS, 동물적 감각 지닌 이상주의자”
그 중에서도 이 전 총재를 정치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만든 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1993년 대법관이던 이 전 총재를 YS가 감사원장으로 발탁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YS의 첫인상을 “그의 말을 듣고 허풍이 아니라 기성 정치인에게서는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의 풍모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동물 같은 정치적 후각을 가졌으면서도 약간의 이상주의자적 면모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었다”고 술회했다.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에 오른 것을 두고도 “이 결단은 나에게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며 “김영삼이라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역인 한 사람과 참으로 굴곡 많고 애증이 엇갈리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1994년 YS와의 갈등 끝에 당시 국무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의 과정도 자세하게 기술하면서 이후 YS가 퇴임 후 낸 회고록 내용을 반박하기도 했다. YS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면담 때 이 전 총재에게 책임을 추궁하자, “잘못했으니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라면서 시종일관 변명했고, YS는 당장 사표를 내지 않으면 해임하겠다고 호통을 친 것으로 적었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YS의 회고록을 보고)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며 “사실과 다른 회고록에 이러쿵저러쿵 대꾸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지만 나의 명예에 관한 것이므로 분명히 해두려 한다”고 밝혔다. 또 “사퇴 이후 청와대 및 민자당 측에서는 (중략) 별의별 유치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그때의 비방,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쓰레기 같은 모략중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전 총재는 “당시 대통령과 면담에서 나는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 관한 총리의 조치가 정당한 것이었음을 적극 설명했다”며 “끝까지 설득하다 여의치 못하면 사의를 표명하고 사표를 제출하기로 처음부터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은 앉자마자 나에게 ‘조정회의에 관한 총리지시는 무엇이요?’하면서 먼저 거론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대통령이 나의 기를 꺾어 사과를 받아내어 복종을 시키려고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나도 대통령을 응시하면서 ‘제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라고 전제하고 조정회의의 주된 설치 취지를 설명했다. (중략) 나는 대통령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길목에 이르렀다고 생각돼 그렇다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사표는 나중에 총무처 장관을 시켜 올리겠다고 말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사퇴하라거나 해임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중략)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실과 다르다.”
이 전 총재는 “나는 때때로 그와 충돌했고 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 했으며, 여당 대표로 있을 때는 당 총재인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그는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나를 배신자라고 비난했지만 소신 때문에 대립한 것을 매도하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DJ, 꼼꼼하고 철저해… 영수회담 때마다 뒤통수”
이 전 총재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패한 후 한나라당 총재로서 7번 영수회담을 한 경험이 있다. 이 전 총재는 당시 영수회담에서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의 인상을 설명하며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영수회담 때 쟁점 사항을 정리한 노트와 회담에서 논의할 사항을 꼼꼼하게 준비한 노트를 가지고 나와 성실성과 철저한 준비가 돋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수회담의 뒤끝은 좋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내에선 ‘7번 만났으나 7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으로 ‘칠회칠배(七會七背)’란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이 전 총재도 회고록에서 “대통령과 비공개로 나눈 대화 중 외부에 발표하지 않은 부분을, 그것도 왜곡해 여당 대표가 발설한 무례함에 화가 났다”고 밝혔다. 영수회담 뒤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회의의 조세형 총재대행은 이 전 총재가 김윤환 전 부총재에 대해서만 김 대통령에게 장시간 구명운동을 한 것처럼 발언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이 발언은 매우 모략적인 것으로 한나라당 내의 내분과 갈등 조장하려는 저의도 있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상은 김 대통령에게 정국 불안의 근원적 원인은 야당 의원 빼가기와 보복사정에 있으며, 예컨대 김윤환 전 부총재에 대한 사정은 영남권 공략을 위한 것으로 비쳐져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회담 뒤 이 전 총재의 처지는 설상가상이 됐다. 이 전 총재는 “검찰은 이회성 관련 사건으로 더욱 압박을 가하고 김윤환 전 부총재에 대해 추가로 30억 원 정치자금 혐의 흘리는 등 다시 야당을 짓누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는 김대중 정부를 “결코 성공한 정권으로 볼 수 없다. 반세기 만에 진보·좌파 정권을 쥐어본 국민에게 무능함과 무책임함만을 각인시켜줬다”고 비판했다.
“DJP연합, 신묘한 수… 환멸 느껴”
이 전 총재는 JP에는 개인적 존경심과 별개로 “젊은 시절 김종필 총재는 풍운아였고 정열과 배짱, 높은 문화적 감각까지 갖춘 매력적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최근 3김 정치 구도에서 그는 상황에 따라 정치공학적으로 합종과 연횡을 구사하는 정치인으로 비쳤다”며 “정치고수의 신묘 현란 정치기술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내 눈에는 신뢰하기 어려운 상대로 비쳤다”고 평했다.
그는 DJP연합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DJP연합은 야합이지만 선거에 이기는 신묘한 수임은 틀림없고 나는 완벽하게 패한 것”이라며 “선거에 이기기 위한 야합이 정권에 부담되거나 족쇄가 되고 국정 수행에 지장을 받았다면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김대중 후보는 임기를 포기하고 내각제로 개헌할 의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김종필 총재를 속인 셈”이라며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공조와 파기를 반복한 DJP연합에 그는 “두 정치 9단의 현란한 재주넘기에 분노보다도 환멸을 느꼈다”며 “이런 정치에 휘둘린 내가 정치에 미숙한 것인가”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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