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갑질 문화혁명’ 중이다. 인격 모욕을 참다 못한 운전기사가 회장님을 고발하고, 공관병이 대장님으로 하여금 군 검찰의 수사를 받게 하는 등 지난 보수정권 시대에서는 본 적이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 교체와 더불어 권위의 시대가 가고, 권익의 시대가 왔다.
갑질 문제는 프랜차이즈업계의 불공정 계약 문제로 부각된 후에 몇몇 회장님과 대장님 사건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정부는 각 부처의 갑질 문화를 전수조사하고 이달 중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다니 이만해도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갑질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후진적 사회문화의 ‘민낯’ 일부를 드러냈을 뿐이라는 점이다. 갑질은 회장님이나 대장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힘의 우열이나 서열이 있는 모든 관계, 즉 정부와 민간, 조직의 상사와 부하, 선배와 후배 등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권력이나 경제적 우열을 배경으로 약자에게 인격적 굴욕을 강요하거나, 그와 유사한 후진적 사회문화가 비단 갑질뿐이겠는가. 패거리 문화, 만성화된 야근 문화, 남성들의 육아 외면, 성 차별 등등 개발시대의 후진적 사회문화가 곳곳에 널려 있다. 따라서 모처럼 조성된 문화혁명의 분위기를 정부의 갑질 근절대책으로 매듭짓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갑질 문제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 사회문화 전체를 돌아보고 자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시대에 가장 중요한 국가경쟁력은 기술보다 문화다. 배경이나 출신이 아니라 오직 실력으로 경쟁하는 문화, 아이디어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문화, 실패를 용인하고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가 있는 곳에 글로벌 인재들이 모여들어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후진적 사회문화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대의 선진국이 될 수도 없으며, 디지털 혁명을 선도하는 경제를 만들 수도 없다.
누구보다도 기업 경영자들은 이 후진적 사회문화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이미 세계화와 디지털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후진적 조직문화를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을 보다 창의적이고 자율성이 강한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 대기업에서 직급을 단순화하고 호칭을 파괴하는 혁신을 추진하고 있으며, 탄력근무제 등 근로형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문화 혁신 성과가 부진한 이유는 직원들이 기업 문만 열고 나가면 공기처럼 사회 전반에 가득 퍼져 있는 개발시대의 후진적 문화를 호흡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후진적 사회문화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로 만들고 있다. 국내총생산의 50% 넘게 수출하고, 한 해에 해외에 3,000개가 넘는 기업을 설립하며, 지난해 2,200만명이 해외여행을 할 만큼 경제활동이 글로벌화 되어 있음에도 후진적 사회문화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정부의 근절대책 발표만으로 흐지부지해서는 갑질 문화의 뿌리를 뽑기 어렵다.
개발시대 이래 누적된 후진적 사회문화는 경제활동의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문화를 이대로 방치하고는 청년세대들을 질식하게 하는 기성세대의 벽을 낮출 방법도,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을 높일 방법도, 저성장의 늪을 헤매고 있는 경제를 활성화 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갑질 문화 문제를 계기로 하여 후진적 사회문화 ‘민낯’의 심각성을 주목하고 이를 청산하기 위한 사회 전반의 다각적인 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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