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화려해도 더 오래간다.
이근호(32ㆍ강원FC)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신태용(48)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오는 31일 이란(홈)-9월 5일 우즈베키스탄(원정)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10차전을 앞두고 21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 처음 소집됐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외한 K리그 소속 11명과 C리그(중국) 소속 4명, 그리고 알두하일SC(카타르)의 남태희(26) 등 16명이 조기소집 됐다. 이근호도 신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근호는 1985년생이다. 1985년생은 ‘황금세대’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많이 배출됐다. 그 중에서도 대구 청구고 시절부터 ‘축구천재’라 불린 박주영(32ㆍFC서울)이 발군이었다. 박주영은 고3 때 33경기에서 47골을 터뜨리며 초고교급 스트라이커로 주목 받았다. 부평고 출신 이근호도 동갑인 하대성(FC서울), 김승용(강원FC)과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불리며 고교 무대에서 꽤나 이름을 날렸지만 박주영에는 못 미쳤다.
성인이 돼서도 박주영이 또래 중 가장 앞서 나갔다.
그는 2005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고 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까지 세 차례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해 동메달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근호는 박주영보다 2년 늦은 2007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남아공월드컵 때는 최종예선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며 한국을 월드컵에 올려놓고도 정작 본선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아픔도 맛봤다.
프로 입문 과정도 박주영이 화려한 장미라면 이근호는 온갖 역경을 이겨낸 잡초에 가깝다.
박주영은 2005년 FC서울에 입단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 해 12골 3도움을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반면 이근호는 같은 해 연습생 신분으로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지만 겨우 5경기에 나섰다. 이듬 해에도 3경기 출전에 그쳐 결국 2군으로 강등됐다. ‘눈물 젖은 빵’을 곱씹은 끝에 그 해 2군 무대에서 22경기 9골 3도움을 기록하며 최우수선수상을 받아 다시 1군에 복귀했다.
늘 한 발 앞선 쪽은 박주영이었지만 정작 ‘롱런’ 중인 선수는 이근호다.
박주영은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전 대표팀 감독 부임 초기인 2014년 11월 이후 한 번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고 있다. 이근호는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이후 한 동안 부름을 못 받은 적도 있지만 K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지난 6월 다시 승선했다. 올 시즌 27경기에 나서 5골 4도움을 기록 중이다. 이근호는 과거 대표팀에서 한 번도 확실한 에이스였던 적은 없다. 하지만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감독들이 가장 믿고 쓰는 자원이기도 했다. 통산 A매치 출전도 이근호는 77경기(19골)로 박주영(68경기 24골)을 이미 넘어섰다.
이근호는 화려한 개인기도, 탁월한 골 감각도 없다. 그러나 누구보다 종횡무진 운동장을 누비고 가장 악착같이 볼을 향해 달려든다. 그는 이번 대표팀 멤버 가운데 이동국(38ㆍ전북 현대)과 염기훈(34ㆍ수원 삼성)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지만 헌신적인 스타일은 여전하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의 빌미를 제공했던 지난 6월 카타르 원정(2-3) 때도 한국은 졸전으로 손가락질 받았지만 팬들은 어느 후배보다 열정적으로 뛴 이근호에게는 박수를 보냈다. 신 감독이 한국 축구의 운명이 걸린 A매치 2연전을 앞두고 이근호를 발탁한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이날 파주 NFC에 들어오며 취재진 앞에 선 그의 각오는 간단명료했지만 가장 이근호다웠다.
“누구보다 한 발 더 뛰겠습니다.”
파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