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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생일상인지…” 울먹인 老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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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의 생일상인지…” 울먹인 老부부

입력
2017.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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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실버봉사단 생일상 봉사

“자식 없으니 찾는 이도 없어…”

거동 불편한 할머니 간곡한 부탁

독거노인 대상이지만 예외 선정

잡채ㆍ미역국 한상 “모처럼 온기”

“내년에 또 올게요” 고마운 인사

17일 경기 가평군 자택에서 생일을 맞은 지기용(오른쪽)씨가 부인과 함께 가평군노인복지관 실버봉사단이 마련한 생일상 앞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신은별 기자
17일 경기 가평군 자택에서 생일을 맞은 지기용(오른쪽)씨가 부인과 함께 가평군노인복지관 실버봉사단이 마련한 생일상 앞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신은별 기자

“이렇게 생일상을 받아 본 게 얼마만인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기분이 참 좋아요.”

분홍색 고깔모자를 쓴 지기용(83)씨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일을 사흘 앞둔 17일 낮 12시, 경기 가평군 자택에서 열린 생일잔치에서 지씨는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미역국에 밥 한 그릇도 뚝딱 해치웠다. “역시 생일엔 미역국”이라며 즐거워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동갑내기 아내 강순옥씨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부부가 소박하게 한 끼를 해결하던 상 위엔 미역국, 갈비, 잡채, 떡, 계절과일이 빼곡히 올랐고 평소 적막했던 집에도 손님들로 왁자지껄했다.

이날 기자를 만난 지씨는 “스물에 만난 첫사랑 아내와 참 비참하게 살았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이 사람(부인)이 난소 수술을 받아 아이를 못 낳았어요. 자식이 없으니 생일상은커녕 찾아오는 이도 없었죠.” 힘들었던 지난 세월이 남긴 한이 담긴 목소리였다. “20년 전이었나. 아내가 기도 수술을 받고 나서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는 말을 하던 중엔 잠시 울컥했다. “참 힘들었는데, 이 사람 덕분에 내가 이렇게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환갑에 이 사람이 세상을 떴으면 (나는) 라면이나 끓여 먹고 매일 술 마시고 담배나 태웠을 테니까요.”

이날 지씨의 83번째 생일잔치는 부인 강씨가 계획한 것이었다. 거동이 불편해 생일상을 차릴 형편이 안됐던 강씨는 ‘가평군노인복지관 소속 실버봉사단이 독거노인들에게 생일상을 차려준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다. 봉사단은 ‘독거노인’이라는 조건엔 맞지 않지만 부부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 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이뤄진 ‘깜짝 파티’였다.

잔치를 열어준 실버봉사단도 평균 연령이 81세에 달하는 말 그대로 ‘실버 부대’다. 10명의 어르신들이 5명씩 두 팀으로 나눠 2013년부터 한 달에 두 명에게 생일잔치를 열어 주고 있다. 이날 잔치를 준비한 이미자(76), 이인순(73), 장옥녀(72)씨는 “거창한 봉사는 우리도 몸이 성치 않아 이런 소박한 생일 잔치 같은 걸 열어주고 있다”고 했다.

연륜이 높은 만큼 봉사단의 손길은 섬세하다. 잔치 전 회의는 필수. 생일상을 차리는 사람과 받는 사람 나이가 비슷하니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11시에 복지관 2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사회복지사들과 봉사단원들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의견을 나누고 규칙을 정했다. “부부에게 양자가 있지만 평소에 왕래는 안 한다”는 사전정보에 봉사단원들은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며 규칙을 정했다.

봉사단은 한번 연을 맺은 독거노인과는 매년 생일잔치를 함께할 계획이다. “한번만 달랑 찾고 다음해엔 안 오면 더 적적할 것”이라는 배려의 마음이다. “청소는 할아버지가 직접 하시는 거에요?”(봉사단원) “그럼요. 밥 먹고 하는 게 없으니 제가 하지요”(지기용씨)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된 생일잔치. “아이고, 어깨가 자꾸만 들썩거리네요”라는 지씨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는 봉사단원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건강하세요! 내년에 또 봬요.”

가평=글ㆍ사진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가평군노인복지관과 실버봉사단이 함께 준비한 생일상에 잡채와 갈비, 각종 과일과 케이크, 꽃이 올라 있다. 신은별 기자
가평군노인복지관과 실버봉사단이 함께 준비한 생일상에 잡채와 갈비, 각종 과일과 케이크, 꽃이 올라 있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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