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아프간 추가 파병 검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설계자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18일(현지시간) 결국 쫓겨났다.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트럼프식 고립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그의 낙마는 미국의 정책 방향성, 특히 대외ㆍ대북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당장 적극적 개입에 기반한 미국의 전통 외교노선으로 회귀할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일개 정치 고문에 불과한 인사의 퇴출에 과하다 싶을 만큼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트럼프 정권에서 차지하는 배넌의 무게감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의 일등 개국공신이다. 대선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한 미국 우선주의 개념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국익을 침해하는 모든 정책에 반대한다”는 모토 아래 미국의 군사개입 축소는 물론 유엔, 유럽연합(EU) 등 예산만 축내는 다국적기구 무용론을 주장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화의 대척점에서 철저한 보호무역주의로 무장했다. 반(反)이민 행정명령과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ㆍ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등 숱한 반발과 파열음을 낸 트럼프의 대외정책들은 이런 배넌의 세계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경질 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싸워 쟁취한 트럼프 대통령직은 끝났다”며 앞으로 백악관 온건주의자들로 인해 자신이 주도했던 국정과제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트럼프 정부의 ‘색깔’이 바뀔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배넌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개입주의자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4월 몰락의 서막이 된 시리아 폭격에 끝까지 반대하다 트럼프의 눈밖에 나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 자리를 내놔야 했다. 16일 진보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인터뷰에서 군사옵션 부정과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해 낙마에 결정타를 날린 대북정책 언급 역시 배넌이 대화와 협상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확신범으로서 평소 신념인 고립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
배넌 제거 효과는 즉각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국가안보회의를 개최한 뒤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해 많은 결정이 이뤄졌다”며 추가 파병 가능성을 내비쳤다. 배넌의 부재는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만드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의 해외 군사작전을 가로 막았던 내부 브레이크가 사라졌다”면서도 개입주의 득세에 따른 대북 강경론의 부상을 경고했다.
하지만 ‘포스트 배넌’ 시대가 고립주의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미 언론은 해석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8일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여부 조사에 착수하는 등 보호무역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반이민 명령 추진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권력 중심에서 한 발 비껴나 야인으로 돌아간 배넌은 극우 본색을 한층 뚜렷이 하며 지지층 결집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질 직후 자신이 만든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로 복귀해 ‘전쟁’까지 들먹이며 트럼프 반대론자들에게 단단히 선전포고를 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실의 조지 베니테즈 선임연구원은 “배넌의 가치관은 지금도 최고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언어에 투영되고 있다”며 “트럼프가 백악관에 남아 있는 한 유럽은 샴페인을 터뜨릴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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