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한모(47)씨는 최근 부동산 투자를 위해 마련한 1억5,000만원의 여윳돈을 토지를 매입하는 데 쓰기로 결정했다. 그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수혜지역으로 꼽히는 경기 남양주시 일대 토지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다. 한씨는 “원래 갭 투자(전세 안고 매매)를 하려고 했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워낙 강력해 토지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투자열기가 땅으로 옮겨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도시재생ㆍGTX 등 국토균형개발이 부각되는 점도 토지 투자를 불러오고 있다.
20일 법원 경매 전문 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국 토지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지난달 80.9%를 기록했다. 토지 낙찰가율이 80%를 넘긴 건 2008년 10월(83.2%) 이후 처음이다. 6ㆍ19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난 6월(77.1%)보다 오히려 3.8%포인트 높아졌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6ㆍ19대책보다 더 강력한 8ㆍ2대책이 나온 이번 달에는 토지 낙찰가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국의 주거시설 낙찰가율은 같은 기간 89.8%에서 88.8%로 낮아졌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부양에서 규제로 돌아서면서 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유동자금이 땅으로 몰려든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국의 땅값은 가파른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상반기 전국 땅값은 1.84% 올랐다. 9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이는 같은 기간 주택(0.54%)과 아파트(0.42%) 가격상승률을 크게 따돌린 것이다. 상반기에 거래된 토지면적(1,095㎢)도 전년보다 10.4% 늘었다. 서울 면적의 1.8배에 달한다.
반면 아파트는 1억원 이상 떨어진 급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15억7,000만원에 팔린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전용면적 76㎡은 최근 호가가 1억원 넘게 하락한 14억5,00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매수세가 붙지 않자 결국 지난 10일 14억원에 거래됐다. 이 단지 인근의 G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대통령이 나서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한 만큼 실수요자들조차 추가 가격 하락 기대에 주택 구입을 미루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경고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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