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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휴가철 끝자락에 생각하는 ‘워라밸’

입력
2017.08.2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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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7, 8월 사람을 만나면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은 단연 “휴가 다녀왔느냐”였다. 딱히 궁금해서 묻는 것 같지는 않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연차 휴가를 소진하라고 지시하는 시대이니만큼 시의적절한 질문이긴 한 것 같다. 대답한 후 나 역시 되묻게 되니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 40, 50대 직장인의 휴가에 대한 생각을 대면 조사하게 됐다.

조사결과 평균치 응답자 대답은 이렇다. “최근 6, 7년간 제대로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올해는 윗사람이 가라고 해 (어쩔 수 없이) 월화수 또는 수목금을 주말과 연결해 5일 쉬었거나 쉬려 하는데, 예약이나 준비를 못 해 대충 보냈거나 보낼 거다.” 말하는 그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나 만족감보다는 당혹감이 더 많이 비친다. 약간 과장하자면 휴가를 마치 20, 30대 받았던 예비군훈련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40대 후반 이전 세대(1955~74년생ㆍ베이비붐 세대) 상당수가 ‘워라밸’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휴가를 떨떠름해 하는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워라밸은 ‘work-life balance’ 즉 ‘직업과 삶의 균형’의 줄임말 신조어다. 요즘 젊은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라고 한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는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라’는 격언은 수없이 들었지만, ‘직업과 삶은 구분하고 균형을 맞춰라’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한 채 나이를 먹었다. 청소년기에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더 공부하라’는 교사의 말이 귀에 못 박힐 정도였으며, 20ㆍ30대에는 또래 사이에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직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직장 밖에 또 다른 나의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낯설다.

가정이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가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자위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집보다 일터에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내 고민을 이해해 주고 적절한 충고와 위로를 얻으려면 하루 대부분을 부대끼며 지내는 직장 동료만큼 적절한 상대도 없다.

물론 쏟아지는 업무에 지칠 때면 휴일과 휴가를 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직장 밖의 삶이 없다 보니 휴일과 휴가에도 직장과 단절하기 힘들다. 모처럼 늦잠을 실컷 자려 해도 출근시간에 눈이 떠진다. 내가 휴가 중임을 알 턱이 없는 거래처에서는 연신 전화와 문자를 보낸다. 가족 대신 직장 후배를 억지로 끌어내 함께 휴일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이 나의 삶을 실현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터전인데 그 밖에 또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은 불성실하며 심지어 불순한 태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성실히 일하는 것으로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 밖 삶’에 무지한 베이비 붐 세대도 속속 은퇴기를 맞게 되면서 워라밸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이게 답을 구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숙제다. 틈틈이 가꿔온 취미는 ‘직장 밖의 삶’으로 연결되는 귀중한 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취미를 가진 베이비 붐 세대가 얼마나 될까. 남다른 재능도 간절한 꿈도 없이 살아온 수 많은 이들은 직장 밖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는 일이 막막할 수밖에 없다. ‘은퇴 후 믿을 건 돈밖에 없다’는 강박에 빠져 평생 모은 알량한 퇴직금을 무모하게 투자했다가 날리고,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비극이 자주 벌어지는 것도 그런 막막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부모를 옆에서 지켜본 젊은이들은 다행히 직장에 지배당하지 않는 삶을 찾으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제라도 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세대로부터 ‘워라밸’을 찾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책 한두 권 읽어서 될 일은 물론 아니고, 걸음마를 배울 때처럼 무수히 넘어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직장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직장에 다니는 베이비붐 세대가 반드시 연차휴가를 다 소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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