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혐의 재판 시작
김기춘 사건 다룬 재판부에선
“朴 인식했어도 지시 입증 불가”
檢 “건전콘텐츠 등 직접 언급”
내달 14일 金 증인 출석 촉각
문화ㆍ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재판이 18일 시작됐다. 검찰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판결문을 분석해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해 나가겠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예고편 성격이던 김 전 실장의 1심에서 담당 재판부가 ‘대통령이 어느 정도까지 보고받았는지 알 수 없다’며 블랙리스트 사건 공범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어, 이에 맞서는 증거를 검찰이 얼마나 제시할 수 있느냐가 주목되고 있다.
법조계에선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재판은 ‘검찰과 김 전 실장 1심 판결문과의 대결’이라는 말이 나온다. 비록 재판부는 다르지만 같은 사건을 심리한 김 전 실장의 1심 재판부 판결 내용을 검찰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판결문에 “박 전 대통령이 관여한 정황이 없다”고 언급돼 있어 블랙리스트 정점이 누구냐를 두고 치열한 증거다툼과 법리 논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 전 실장의 1심 판결문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크게 3가지 논거를 들어 언급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좌편향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박 전 대통령 인식에 따라 ‘좌파 지원 축소, 우파 지원 확대’ 기조가 형성됐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시행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크다고도 봤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방안이 보고돼 이를 승인 내지 지시한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처음 열린 블랙리스트 혐의 관련 재판에서도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정황을 조목조목 짚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된 관련자 진술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증명하는 데 총력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검찰이 제시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녹취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 9일 청와대를 방문한 김 전 장관에게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 잘못된 영화로 인해 젊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한다”고 언급했다. 김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건전콘텐츠라는 단어를 썼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보조금 집행이 잘 돼야 한다. 편향적인 것에 지원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블랙리스트’를 일컫는 ‘건전콘텐츠’나 ‘보조금 집행’이라는 단어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김소영 전 청와대 문체비서관의 녹취록을 근거로 “김 전 비서관은 문예기금ㆍ영화ㆍ도서 분야에 대한 보조금 지원 관련 보고서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증언했다”고 강조했다.
초미의 관심인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의 첫 법정 대면은 김 전 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내달 14일 예정돼 있다. 한편 법무부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지난 17일 서울구치소에서 동부구치소로 이감됐다. 협심증 치료 병력 등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응급상황 발생시 긴급 이송을 대비한 것이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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