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2년 전 미국 시애틀 미술관에서 기증받은 덕종어보가 조선시대가 아닌 일제강점기에 다시 제작된 어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이 사실을 지난해 말 확인하고서도 널리 알리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18일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5년 환수한 덕종어보는 1924년 제작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어보를 환수할 당시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죽은 아버지 덕종(1438∼1457)을 기려 1471년 제작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1924년 4월 12일 덕종과 예종의 어보 도난사건이 발생해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며 “최근 미국에서 반환된 문정왕후어보, 현종어보 공개 특별전 자료를 보다가 함께 전시예정인 덕종어보가 1924년 제작된 것이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측도 이를 인정했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어보들을 전시할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 개막을 앞두고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덕종어보 등 어보 5과가 도난 됐던 사실을 지난해 알게 됐다. 분실한 5과는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에 의해 재제작 됐으나 이중 일부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또 다시 분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덕종어보 실물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표면성분분석과 같은 과학적 조사를 할 수 없어 제작시기를 확정할 수 없었다”며 “이후 재제작 됐다는 사실을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와 도록에 명기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만들어진 어보가 친일파인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의 지시로 제작된 ‘짝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모조품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1924년 종묘에 보관 중이던 어보가 분실돼 종묘 관리자였던 이항구는 오히려 분실의 책임을 지고 징계 대상이 됐다”며 “어보 재제작은 순종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며 다시 제작된 어보는 정식으로 종묘에 봉안된 왕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어보”라고 밝혔다. 이번에 미국에서 돌려받은 문정왕후어보 역시 처음에 만들어진 어보가 아니라 명종 8년 경복궁 화재로 훼손된 후 다시 만들어져 공식 어보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그간 이러한 내용을 한번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선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올해 1월 문화재청 지정조사위원회에 정식으로 보고됐고,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덕종어보를 비롯한 조선왕실 어보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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