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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야당도 100일인데

입력
2017.08.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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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100일을 자축할지 자조할지는 야당 스스로에 달렸다. 게티이미지뱅크
야당 100일을 자축할지 자조할지는 야당 스스로에 달렸다. 게티이미지뱅크

야당 100일 술자리가 차려졌다. 김초선 의원이 말문을 열었다. “투사가 너무 없어요. 저를 봐도 야성(野性)이 20%는 부족한 거 같아요. 여당 할 땐 그래도 ‘2%만 채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1년 만에 처지가 180도 달라지니 영 적응이 안되네요.”

“맞아요. 야당에서 초선은 ‘용병’이라고 하잖아요.” 박비례 의원이 말을 받는다. “그런데 전투력을 한껏 뽐내야 할 인사청문회 때 어땠어요? 시작은 낙마시키겠다는 결기로 가득 차 목소리를 높이더니 조곤조곤 답변하는 후보자에 반박 한번 못하고 ‘알겠습니다, 다음 질의 때…’로 마무리하는 동료들을 보니 저도 답답하기 짝이 없더라고요.”

이재선 의원이 맞장구를 친다. “장관 후보자한테 청와대 인사검증 라인의 문제를 따졌다가, ‘그건 제가 답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나오니까 ‘그런가요’ 꼬리를 내리는 의원도 있더라고. 허허….”

김 의원이 다시 받았다. “오죽하면 원내대표가 ‘특강’까지 했을까요. ‘7분 질의가 결코 짧지 않으니 뻔한 사실 확인 말고 기사 제목으로 뽑힐만한 내용을 5개씩은 준비하라’고 열변을 토하던데,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원내대표도 내가 볼 때는 너무 순해.” 이 의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 오더 받느라 그런지 힘이 없어 협상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던데, 아니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얻은 게 뭐냐고. 우리 위원장 몫도 아닌 특위(특별위원회)만 덜컥 합의해온 거 물리느라 힘들기만 하고.” 김 의원에게 한 잔 따라주며 그가 덧붙였다. “그래도 초선들이 최전선에 나서서 좀 싸우는 맛이 있어야지. 왜 이렇게 한심한가 해서 내가 도대체 어떻게 공천 받아서 온 샌님들인가 취재까지 해봤다. 나 때는 말이야, 언론이 나한테 ‘친박’이다 뭐다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 앞에서 쓴 소리는 다 했다고.” 쉴새 없이 쏟아내던 이 의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통령이 그렇게 된 마당에 친박, 비박이 어딨어. 그런데 아직도 삿대질하는 놈이 있질 않나. 김 의원, 나는 요즘 정치가 참 싫다….”

듣기만 할 뿐 내내 입을 다물고 있는 최중진 의원을 바라보며 김 의원이 말했다. “이런 때 형님들이 좀 이끌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자들은 그래도 3선 선배들이 제일 개혁적이라고 평하던데.”

최 의원이 고개를 내젓는다. “우리는 속이 편한 줄 아나. 후반기에 상임위원장이라도 하려면, 밉보여선 안 된다 아이가. 우리 당이 3선 홍수라, 상임위원장 후보들이 넘쳐나잖아. 2년 임기를 우리끼리 1년씩 쪼개서 하자고 구두 합의를 하고 물러났는데 지금 다 입 싹 씻고 있잖아. 그래도 뭐라고 말도 못 꺼낸다. 여당일 때 일이라, 상임위원장 바꾸자고 하면 지금 여당이 가만히 있겠나 말이야. 여야가 바뀌었으니 이 참에 상임위 더 내놓으라고 하겠지.”

김 의원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초ㆍ재선들이 나서서 정풍운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많은데….”

이 의원이 곧바로 응수했다. “있어봐라. 다 때가 있는 기다. 대통령 지지율이 언제까지 이럴 줄 아나. 내리막길이 온다. 잘해서 잡은 정권이가, 우리가 교만해서 내준 기지.”

가상 대화지만 허구는 아니다. 1야당 의원들한테 들은 말을 대화로 엮었을 뿐인 까닭이다. 100일 평가는 대통령만 받아야 하는 게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진 대선이었기에 이를 바로잡으려 야당이 뭘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꼭 3년 전 우리나라를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말을 남겼다.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 지금 야당이 구해야 할 답도 이것 아닐까.

김지은 정치부 차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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