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마녀재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영국 랭커셔 펜들 힐(Pendle Hill)의 마녀재판이 1612년 8월 18일 열렸다. 마녀로 체포된 이는 모두 12명이었지만, 조사 도중 고문으로 한 명이 숨졌고, 11명(여성 9명)이 재판에 회부돼 10명이 마녀(악마)로 교수형 당했다.
1595년 마을 주민 크리스토퍼 너티와 아들 로버트가 영문 모르게 급사하는 일이 생겼다. 유족들은 이웃집 노파 앤 위틀(Anne Whittle)과 그의 딸 앨리자베스가 마법을 걸었다고 여겼다. 중세인들은 대개 마녀로 심술궂은 노파와 그의 가족을 의심했다.
1612년 3월 또 다른 의혹 사건이 터졌다. 앨리슨(Alizon)이라는 여성이 한 도붓장수와 흥정을 하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던지 돌아서는 도붓장수를 향해 주문 같은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 직후 도붓장수가 쓰러진 거였다. 법원 서기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앨리슨은 자신이 마법을 걸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시인했다. 다행히 도붓장수는 무사했고, 그 일도 유야무야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야심가였던 치안판사가 그 일을 안 뒤 대대적인 마녀 사냥을 시작했다. 제임스1세 치하였다. ‘ 악마론(Demonology)’이란 책을 쓸 만큼 마녀(악마)의 존재를 믿던 제임스1세는 마녀 사냥을 영국인의 의무라 여겼다. 치안판사의 마녀 사냥은 그러니까 출세의 방편이었다. 가톨릭 혁명단체 회원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제임스1세 폭탄암살 기도도 있었던 터였다. 마녀 재판 법정에는 앨리슨 일가와 위틀 일가 외에 가톨릭 가족들도 포함됐다. 당시 법원 서기가 재판 과정과 진술 등을 기록한 ‘랭커스터 지역 마녀들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란 책을 썼다. 그 책은 당시 영국 각 지역 법원과 식민지 미국에까지 전파됐다.
한편 그 재판에서 유죄의 결정적인 증거는 앨리슨의 9살 동생 재닛 드바이스(Jennet Device)의 진술이었다. 재닛은 법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 일가족 전부와 이웃들을 마녀라고 고발했고, 배심원단은 그의 진술을 신뢰했다. 그 재판을 기점으로 14세 미만 청소년의 법정 진술 효력을 부정하던 관행이 폐지되고 더 어린 아이들의 진술을 인정하게 됐다. 1692년 19명의 마녀를 처형한 미국 ‘세일럼(Salem) 마녀재판’의 유죄 근거도 대부분 아이들의 증언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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