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처벌할 수 있는 기간 7년 지나”
도난 도자기 유통한 매매업자도 “증거 부족”무죄
14년 전 일본의 유명 고미술상 집에 침입해 도자기 18점을 훔쳐오도록 사주한 60대 남성이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는 17일 강도교사 혐의로 기소된 고미술품 매매업자 정모(65)씨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판결을 내렸다. 면소는 형사소송을 제기할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을 때 내리는 판결로, 기소되지 않은 것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정씨는 2002년 5월 평소 알고 지내던 문화재 강도범 김모씨에게 일본인 고미술상 A씨가 사는 일본 도쿄(東京) 집 주소를 알려주며 “A씨가 값나가는 우리나라 도자기를 여러 점 갖고 있다.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김씨는 그 직후 지인 송모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두 사람은 A씨와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포박하고, 수면제를 강제로 먹인 다음 도자기 18점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들이 훔친 도자기는 모두 조선 백자와 고려 청자였다. 이 중에는 왕실에서 사용했던 감정가 150억 원 상당의 ‘이조염부오조용호(李朝染付五爪龍壺)’도 있었다. 김씨 등은 훔친 도자기를 국내로 들여와 고미술품 매매업자 B씨에게 15억 원에 팔아 넘겼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도교사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고, 정씨의 시효는 이미 지났다”며 “정씨가 외국에 머문 기간이 있긴 하지만, 처벌을 피할 목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워 체류한 기간에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훔친 도자기들 중 17점을 사들여 시중에 유통하고 그 중 한 점을 자신의 집에 숨겨 보관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함께 기소된 B씨에 대해선 “B씨가 도자기를 챙겨 숨겼다는 증거는 정씨 진술뿐인데, 정씨가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하는 등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B씨가 문화재라는 것을 알고 도자기들을 보관한 것으로 보이지만, 보관 방법을 살펴보면 ‘은닉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A씨는 2005년 국내 세계도자기 엑스포에서 발간된 전시목록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도자기를 발견하고 한국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와 송씨는 같은 해 경찰에 붙잡힌 뒤 재판에 넘겨져 각각 징역3년과 7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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