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심가치에 대한 모욕”
대통령 경제자문단 해체 선언
軍 장성 “인종주의 자리 없어”
공화당서도 “역겹다”
부시 부자도 공동성명
므누신 재무장관 사퇴설까지
인종주의에 ‘아니오’라고 말하길 거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ㆍ외에서 ‘왕따’로 전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동맹을 자처했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곁을 떠났고 공화당과 심지어 ‘정치적 중립’을 금과옥조로 삼는 군마저 등을 돌렸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유럽연합(EU) 등도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의 친 백인우월주의적 행태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우군은 그토록 비판을 꺼렸던 극우세력뿐이다. 뉴욕타임스는 “취임 이후 줄기차게 ‘고립주의’를 부르짖던 트럼프가 정작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기업ㆍ성장우선 정책을 지지했던 유명 기업인들은 16일(현지시간) 일제히 반 트럼프 노선으로 돌아섰다. 그가 전날 샬러츠빌 폭력 시위 당시 백인우월주의자들에 맞선 반 극우 시위대에게도 재차 책임을 물으면서 끝내 인종차별주의에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아서다. AP통신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경제자문기구 전략정책포럼(SPF)의 의장인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은 이날 오전 위원 12명과 긴급 전화회의를 가진 뒤 자문단 해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식 통보했다. SPF는 성명을 통해 “편협함과 인종주의, 증오는 미국 핵심가치에 대한 모욕”이라며 트럼프에게 확신한 선을 그었다.
다른 자문기구인 제조업자문위원단(AMC)에선 이미 7명이 사임했다. 이날도 식품회사 캠벨 수프의 데니스 모리슨 CEO, 3M의 잉거 툴린 CEO가 각각 탈퇴 행렬에 가세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기업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느니 AMC와 SPF 활동을 중단하는 게 낫겠다”며 해체를 전격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트윗은 SPF가 해체 합의를 발표하기 직전 올라와 기업인들에게서 버림받는 구도를 우려한 그가 자진해 자문단을 없애기로 연출한 의도가 강하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정치 사안에 침묵을 지켜온 장성들도 이번엔 입을 열었다. 마크 밀리 육군 참모총장과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이 잇따라 자군 내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군과 미국 전체에 인종주의의 자리는 없다”며 장성들을 지지했다.
당정관계는 아예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 “바람직한 신(新)나치는 없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의 이상과 자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백인우월주의를 “역겹다”고 비난한 바 있어 여당 의회 사령탑 모두 대통령에 반기를 든 셈이 됐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인종적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거들었다. 공화당 분석가인 지아노 칼드웰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통령은 말 그대로 미국의 양심을 배신했다”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이 방송의 진행자 셰퍼드 스미스는 “트럼프를 옹호하겠다는 공화당 의원을 한 명도 섭외할 수 없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트위터에 자신의 발언이 인종주의 옹호라고 지적한 린지 그레이엄,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 등을 잇따라 힐난하며 “내가 증오와 편협에 대해 말한 것을 완전히 오도하고 있다”고 정치권과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트럼프케어와 세제개혁 등 산적한 입법 과제를 앞두고 ‘러시아 스캔들’ 수사까지 본궤도에 오른 상황에서 지지기반 전면 이탈로 트럼프 정권의 명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상치 않은 여론을 감지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이날 남미 순방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하기로 했으나 벌써부터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자진 사퇴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공화당 전략 분석가 라이언 윌리엄스는 정치전문지 더힐에 “트럼프에게 더 이상 정치적 자산은 남아 있지 않다. 극소수만 좋아하는 대통령은 계속 나라를 수렁에 빠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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