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50㎞의 투구가 포수 글러브에 꽂히는데 걸리는 시간은 0.44초. 찰나의 순간에 타자는 구질을 파악하고 스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움직이는 물체를 인식하는 ‘동체시력’의 중요성은 야구계에 이미 널리 알려졌다.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는 TV를 볼 때 시력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쓴다. 프로 야구 타자들의 동체시력을 측정해보면 대부분 일반인보다 훨씬 발달돼 있다. 타자들에게 시력은 매우 중요하지만 일부 메이저리그 구단은 눈이 생명인 타자들에게 매일 15분씩 컴퓨터 게임을 시키고, 심지어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이 게임은 단순한 동체시력 트레이닝이 아닌 한 단계 더 발전한 신경 트레이닝(Neuro Training)의 일부분이다.
최근 수년간 메이저리그 구단은 야수의 능력을 평가할 때 쓰는 ‘파이브 툴’(Five-Tool)인 타격의 정확성과 파워, 수비, 송구, 주루 능력 외에 ‘투구 인식’(Pitch Recognition)이라는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동체시력이 단순히 빠른 공을 보는 것이라면 투구 인식은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별하고 더 나아가 공의 종류와 궤적까지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체격과 배트 스피드가 뛰어난 타자라도 투구 인식 능력이 떨어지면 스윙의 질이 나빠 타자로서 성공 가능성도 낮아진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2011 드래프트에서 투구 인식 능력을 보고 뽑은 외야수 무키 베츠(25)의 성공 사례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츠는 키가 175㎝에 불과하지만 작은 체구로도 지난해 실버슬러거와 골드글러브를 차지하고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는 스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투구 인식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신경 트레이닝 중 한가지 예를 들면, 컴퓨터 화면의 마운드에서 날아오는 공의 색깔이 도중에 파란색으로 바뀌면 버튼을 눌러 점수를 따는 방식이다. 간단한 컴퓨터 게임처럼 보이지만 직접 체험해보니 공을 맞히기가 꽤 까다로웠다.
규칙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력이 발달하듯, 지속적인 신경 트레이닝은 두뇌의 투구 인식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15분씩 컴퓨터로 하는 신경 트레이닝은 제2의 무키 베츠가 되기 위해 컴퓨터로 타격 훈련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선수들의 몸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투자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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