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폰케이스ㆍ가방에 새긴 초코파이
새우깡은 잠옷ㆍ머리띠에 활용
티셔츠에 그려 넣은 죠스바까지
장수브랜드들 소비자에 큰 인기
#2
불황으로 내수침체 계속되자
고육지책으로 업계 간 손잡아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업종간의 ‘컬래버레이션(협업)’ 바람이 올해 들어 패션업계와 제과업계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주로 초코파이, 새우깡, 메로나 등 제과(건과ㆍ빙과) 장수브랜드가 의류, 생활용품 등에 디자인으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익숙한 제품들의 화려한 변신을 통해 불황을 극복하려는 업계의 ‘생존전략’이라는 평가다.
가장 화려하게 변신한 건 1992년 출시된 빙그레의 대표 아이스크림 ‘메로나’다. 빙그레는 스포츠용품브랜드 휠라코리아와 협업해 지난 5월 운동화 안쪽과 밑바닥을 메로나처럼 연두색 계열(민트 그린)로 디자인한 제품 ‘코트디럭스 메로나’를 출시했다. 첫 생산 물량 6,000켤레가 출시 2주 만에 ‘완판’됐고, 7월엔 신제품 2종을 추가로 제작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주로 10, 20대 젊은 고객이 많은 점을 고려해 초기 물량에선 가장 큰 사이즈를 250㎜로 제작했는데, 홈페이지와 온라인몰을 통해 ‘남성용은 없냐’는 문의가 많아 추가 물량은 280㎜ 크기까지 제작했다”며 “추가물량과 신제품 2종도 70% 이상 판매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빙그레가 6월 이랜드의 스파(SPAㆍ상품기획 생산 소매 유통까지 모두 하는 브랜드) ‘스파오’와 협업으로 출시한 ‘메로나 티셔츠’, ‘메로나 카디건’ 등은 목표 매출의 120%를 달성했다. 길쭉한 메로나 모양을 활용해 텀블러 등 입구가 좁은 병을 닦을 수 있는 ‘메로나 수세미’는 6월말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출시된 이후 생활가정용품 분야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다. 또한 빙그레는 지난달 제주 용암해수 1호 기업인 ㈜제이크리에이션을 통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탄산음료 ‘메로나 제주 스파클링’을, 이달 초에는 생활뷰티기업 애경과 메로나 모양을 본뜬 칫솔과 치약케이스 ‘2080 X 빙그레 칫솔’을 각각 선보였다.
메로나 보다 더 오래된 장수 브랜드의 변신도 이어졌다. 오리온은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손잡고 1974년 출시된 초코파이를 새겨 넣은 한정판 티셔츠와 스마트폰케이스, 가방 등을 내놔 두 달 만에 완판됐고, 중고 제품이 온라인에서 정상 판매가 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또 1971년생인 농심 대표 스낵 새우깡을 활용한 남방, 잠옷, 머리띠 등 45개 제품을 지난달 말 출시했다. 10일간의 매출은 기대치를 웃돈 1억3,000만원에 달했다. LF는 롯데제과와 손잡고 인기 장수 아이스크림인 ‘죠스바’를 베어 문 디자인이 그려진 옷 등을 지난달 자사 온라인몰에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패션업체와 제과업체가 손잡고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제과 장수브랜드를 다양한 제품으로 변신시킨 이면에는 수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불황’이 자리잡고 있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패션업계는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발생한 극심한 내수침체에서 여전히 업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제과업계 역시 출산율 감소로 인해 주 고객인 어린이와 청년층이 크게 줄었고, 커피전문점과 디저트전문점 등 경쟁시장이 커지면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두 업계가 중심이 돼 짜낸 ‘고육지책’이 바로 협업, 그 중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장수 브랜드를 활용한 변신이라는 게 두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면 가장 먼저 소비가 줄어드는 게 의류 등 패션 품목”이라며 “장수브랜드를 차용한 친숙한 디자인을 새로운 형태인 의류 등에 적용하자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빙과업계 관계자도 “1980~90년대에는 여름 성수기를 겨냥해 봄부터 TV CF를 준비해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지금은 TV 광고를 할 여력도 없을 뿐 아니라 광고를 내보내면 비용 때문에 오히려 적자를 볼 만큼 아이스크림 시장이 악화했다”며 “아이스크림은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해 차라리 독특한 이색 마케팅을 벌여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는 게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SPA나 10, 20대에게 인지도가 높은 스포츠브랜드가 협업에 주로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적인 소비자보다는 교체 주기가 빨라지는 유행을 쉽게 받아들이는 젊은 고객에게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장수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의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포장이나 모양에 변화를 주는 게 전부인데, 패션 아이템과 접목하면 소비자들에게 주는 ‘임팩트(충격 효과)’는 훨씬 크다”고 말했다.
계절과 어울리는 품목을 선택해 그때그때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전략도 성공적이란 평가다. 초콜릿을 주고 받는 밸런타인 데이에 맞춰 ‘초코파이’를 디자인 소재로 활용하거나 여름을 앞둔 봄부터 ‘메로나’, ‘죠스바’ 등 장수 아이스크림을 잇따라 변신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휠라코리아 관계자는 “여름 옷이나 신발에 자신이 즐겨먹는 아이스크림이 그려져 있으면 직감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받아 상품 매력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장수제품은 나이가 드는 주력 소비층 외에도 젊은 소비자를 새로 발굴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며 “최근에는 젊은 소비자가 유행을 선도하고 다른 세대가 따라 오는 추세라 젊은 소비자를 잡는 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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