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저희 건강하게 잘 다녀왔어요.”
7주 만에 까맣게 타서 돌아온 아이들이 품에 안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살아온 길원옥(89)ㆍ김복동(91) 할머니의 입에선 연신 “예쁘다”는 소리가 나왔다. 한국과 일본을 거쳐 44일 동안 계속된 자전거 종주로 지칠 법도 했지만 이들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진상을 알리기 위해 인천대 재학생 3명으로 구성된 ‘바퀴달린사과’(이하 사과)와 할머니들의 만남은 그렇게 훈훈하게 이뤄졌다. 이들의 종주는 1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96차 일본군 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참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지난달 4일부터 이날까지 진행된 이들의 여정은 약 2,500㎞에 달했다. 일본 삿포로에서 도쿄, 후쿠오카 등 6개 도시를 거친 뒤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 서울로 향한 긴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섭씨 30도를 넘는 더위에도 매일 페달을 밟은 건 일본 청년들에게 직접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12ㆍ28 한일 위안부 협상은 무효다’란 손팻말을 든 채 방문하는 도시에서 현지인들과 껴안는 ‘프리허그’를 이어갔다. 사과 일원인 문영준(25)씨는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나갈 건 젊은 세대지만 이들 대부분은 위안부 문제를 모르거나 왜곡된 사실만 알고 있다”며 “이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리고 ‘사과의 포옹’을 받기 위해 프리허그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의도로 출발했지만 타국에서의 자전거 종주는 가시밭길이었다. 매일 평균 80㎞를 달려야 했던 일정은 체력 좋은 20대 청년들에게도 녹록치 않았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작은 텐트 하나에 의지해 노숙을 하는 일도 잦았다. 20일째 되는 날엔 비를 맞으며 달리던 문씨가 둔덕에 걸려 넘어지면서 자전거가 파손되는 사고도 겪어야 했다.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한 일부 일본인들의 따가운 시선도 장애물이었다. 사과의 또 다른 일원인 정구현(25)씨는 “‘정부 허가를 받은 거냐’며 시비를 걸거나 우리 앞에 침을 뱉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럴 때 가만히 있으면 더 오해가 생길 것 같아 번역 응용 소프트웨어(앱) 사용해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고 말했다.
힘든 여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주장에 관심을 갖고 먼저 포옹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사과의 맏형인 이강안(26)씨는 “일본사람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사과하라’는 손팻말을 보고도 우리와 포옹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매번 10~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왔다”고 전했다. 문씨는 “후쿠오카에서 만난 한 일본인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응원한다’며 검은 봉투 하나를 주셨는데 나중에 열어보니 1만엔(한화 약 10만원)이 들어있었다”며 “정말 놀랍고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일본인들에게 받은 ‘사과의 포옹’을 16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전달한 것을 끝으로 ‘사과’의 바퀴는 멈췄다. 하지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씨는 “우리의 도전은 작아보일지라도 나비의 날갯짓처럼 큰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우리의 취지에 공감하는 청년들이 또 다른 행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최윤수 인턴PD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