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꿈이 공무원인 슬픈 현실
공공부문 평균임금 민간보다 월등
증원 앞서 정규직 고통 분담을
부친은 공무원으로 34년을 근무하고 1994년 퇴직했다. 늘 박봉이었다. 열다섯 번 셋방살이 이사 끝에 봉천동에 간신히 집을 마련했다. 가족과 함께 휴가 한 번 맘 편히 간 적이 없다. 70ㆍ80년대 두 자릿수 고도성장을 구가한 민간에 비해 공공부문 근무여건은 한참 열악했다. 지금도 남편 도리, 아버지 역할 다 못한 게 가슴 아프다고 하신다. 그래도 한국 노인 2명 중 1명이 속한 빈곤 대열에선 벗어났다. 연금 덕분이다.
부친 세대 공직자에게 연금은 박봉에 대한 보상 성격이 강했다. 30여년 늦게 출발한 내 또래 공무원 임금은 민간을 앞선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공무원 평균 실질연봉(복지포인트 등 포함)은 임금근로자 1,300만명 중 상위 7% 수준이다. 그러니 고교 동창 모임에서 가장 부러움을 사는 이는 공무원 A다.
공립고 교사인 그의 지난해 연봉은 8,900만원. 9년 뒤 퇴직하면 월 320만원(현재가치)을 연금으로 받는다. 지난해 중학교에서 명퇴한 그의 아내는 퇴직 다음달부터 월 27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임금피크제도 없다. 퇴직 때까지 꾸준히 임금이 오른다. 복지 혜택도 월등하다. A가 다니는 학교의 정규직 교사는 49명. 이 중 12명이 휴직 중이다. 아이를 낳으면 3년간 육아휴직을, 배우자가 해외근무를 가면 동반휴직을 할 수 있다. 석ㆍ박사 연수휴직도 있다. 박사과정은 심사를 거쳐 50% 급여를 받으며 3년간 휴직이 가능하다. 병가는 2년까지 주어진다. 처음 1년은 본봉(일부 수당 제외)의 70%, 그 다음해는 50%를 받는다.
A가 사대를 나와 교직에 입문한 80년대 한국경제는 연평균 10% 성장했다. 당시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은 인기가 없었다. 담임에게서 사대 진학을 권유받은 학생이 “사대 나와 봤자 선생님밖에 더 하느냐”고 했다가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안기부는 대학을 돌며 7급 특채 지원을 애걸했다. 그만큼 민간에 좋은 일자리가 넘쳤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23만명이 몰렸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시생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시에 뛰어드는 10대 청소년도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영악한 젊은이들은 진작 알아챘다. 민간에서 저녁 있는 삶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연금과 복지 혜택을 감안하면 공공부문 근무여건이 민간을 멀찍이 추월했음을.
민간 일자리는 줄고 있다. 상당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생존 위기에 놓인 탓이다. 주력 산업 경쟁력이 한계에 달해 대기업 고용 창출력도 떨어지고 있다. 민간에서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여력 있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걸 탓하긴 어렵다. 문제는 돈이다. 공무원 증원에만 5년간 28조원이 든다. 건강보험보장(30조원), 기초생활보장(32조 원)을 감안할 때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도 “정규직이 임금동결 등 연대의식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정규직 반발 움직임이 만만찮다. 승진이나 임금상승 제약 같은 미래의 불이익을 우려해서다. 좋은 임금과 근무조건을 보장하면서 정규직 비율을 높게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정규직 비율 99%인 오뚜기의 임금이 동일 업종 평균보다 낮은 게 그 방증이다.
공공부문은 청년인재의 블랙홀이다. 미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 정리해고가 불가능하고 비효율과 부패도 여전하다. 평균임금은 민간보다 높다. 죽을 때까지 연금으로 책임져야 한다. 개인에겐 좋은 일자리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부담이다. 이런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득권 공무원의 자구노력과 고통 분담이 전제돼야 한다. 정부는 민간기업 등기임원의 연봉 공개를 의무화했다. 기업별 임금 수준 공개도 추진 중이다. 그래도 공무원 임금 공개나 임금피크제에는 묵묵부답이다. 공무원의 안정되고 저녁 있는 삶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국민의 나라’를 내세우는 정부라면 국민의 기울어진 삶부터 챙기는 게 옳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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