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은 그야말로 성공한 핵실험이었으며, 그때부터 미국 조야에서는 ‘선제타격’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불량국가의 핵 보유라는 악재 속에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초강경 매파들로 안보진용을 꾸렸고 분단 이후 우리가 금기시해오다시피 한 선제공격이라는 단어가 거의 매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게 그것이 합법적인 선제타격이냐, 불법적인 예방전쟁이냐를 논할 필요가 없다. 현실적으로 그 누가 미국의 예방전쟁을 불법이라는 이유로 응징할 수 있겠나.
이런 상대를 만났으면 김정은도 종래와는 다른 작전을 구사해야 하는데, 같이 맞부딪히는 전술을 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서로 피할 길 없는 기찻길에 올라타서 폭주기관차처럼 마주 달리고 있는 치킨게임을 시작했다. 원래 치킨게임의 승자는 담력 큰 쪽이 이긴다. 쫄면 지는 거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간도 크고 덩치와 부리도 어마어마하다. 반면에 김정은의 부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르면 내년쯤 부리가 완성될 텐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전에 부딪혀 버릴 기세다. 이 치킨게임의 승부는 뻔하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다. 바로 ‘서울 불바다’다. 1차 북핵 위기 때인 1994년3월 판문점에서 박영수 조평통 부국장이 한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북한군은 거의 와해된 상태여서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 협박이 통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의 공격을 제지하며 북한 신포에 경수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하는 등 제네바합의를 통해 위기를 넘겼다. 이 서울 불바다론은 확대재생산 되어 지금은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북한이 우리를 향해 포탄을 비 오듯 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군의 정밀타격 무기들이 핵과 지휘통신시설을 타격하고 있을 때 벙커 속의 김정은이 조건반사적으로 서울 불바다를 지시한다면 한국군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대규모 지상군이 투입될 수 없는 미군만의 공습으로는 김정은의 신병을 확보하기 힘들다. 하지만 막강한 한국 육군이 전쟁에 개입하면 김정은은 반드시 체포되어 이라크의 후세인처럼 사형 당할 것이다. 즉 서울 불바다는 ‘반드시’ 김정은 자신의 죽음과 연결된다. 반면에 미국의 공격이 있을 때 중국과 러시아에 중재를 요청하여 핵을 내 놓고 정권을 보장받는 협상을 하지는 않을까. 전자인 서울 불바다는 ‘반드시’ 죽고 후자인 협상은 ‘어쩌면’ 살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처럼 종신권력을 누릴 수도 있다.
압박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지 모르고 우리가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바로 북한군이 우리에게 포탄을 날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군이 미군의 북폭에 일심동체처럼 같이 작전한다면 당연히 우리에게도 포탄을 날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주한미군마저도 우리 영토 내에서 군사작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게 우리를 공격할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우리에게 포탄을 날리게 된다면 우리는 전력을 다해 북진하여 반드시 명령권자를 응징하겠다는 결기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내용이 담긴 연설을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했다. 물론 문대통령은 ‘한반도’라고 말했지만 필자는 ‘대한민국’이라 이해했다.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대한민국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고 북핵 위기가 해결되려면 이게 최선이라 여겨진다. 우리 스스로 세뇌되어 온 서울 불바다론이 과연 실제로 이루어질지 냉철히 돌아볼 때다. 분명한 것은 내년이 지나면 북한 핵이 완성 되니 시간이 없고, 우리 역시 이 판에서 쫄면 지는 것이다.
신인균 자주국방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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