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득세하는 여름 극장가에 문학의 향기가 스며들고 있다.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잇따라 관객을 만난다. 정통 문학 작품을 옮긴 영화들이 특히 많아 눈길을 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10일 개봉해 15일까지 2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영국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노인 토니(짐 브로드벤트)가 예기치 못한 한 통의 편지로 첫 사랑 베로니카(샬롯 램플링)와 재회한 뒤 자신의 기억과는 다른 과거를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과거와 현재가 1, 2부로 나뉘어 전개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정교하게 교차시켜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기억의 왜곡과 그로 인한 운명의 반전이란 주제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통찰력과 지적인 유머가 돋보인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레이디 맥베스’라는 제목으로 극장에 걸렸다. 늙은 지주의 집에 팔리다시피 시집을 온 열일곱 살 소녀 캐서린의 욕망과 범죄 행각을 그린다. 극의 배경을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옮겼지만 역동적인 전개와 선명한 상징성 등 원작의 색채는 그대로다. 캐서린을 연기한 신예 플로렌스 퓨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압권이다. 대작들 틈바구니에서도 관객 1만8,000여명이 기꺼이 이 영화를 찾아 봤다.
한국 소설들도 영화로 재탄생한다. 다음달 개봉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3년 출간 첫 주부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김 작가가 최근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해 대중과 더 친밀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설경구)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살인 습관이 되살아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범죄 스릴러로 풀어낸다. ‘용의자’를 만든 원신연 감독이 40분만에 원작을 독파한 뒤 영화화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도 영화로 만들어져 다음달 개봉한다. 1636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청나라 대군에 에워싸여 고립된 남한산성 안에서 척화파와 주화파가 대립한 47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 출간 10주년과 100쇄 돌파에 이은 영화 개봉이라 더 뜻 깊다.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 호화 캐스팅이 원작의 무게감을 재현한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를 스크린에 옮겼던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밀리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 영화도 두 편 개봉을 앞뒀다. 이달 23일 선보이는 ‘다크타워: 희망의 탑’의 원작은 킹이 33년간 집필한 역작으로 킹은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킹의 소설 중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그것’은 31년 만에 영화화돼 다음달 개봉한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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