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엔지니어 채용프로그램 계약조건
중도 포기 땐 최대 3600만원 위약금
“사실상 임금” 근로기준법 위반 지적에
삼성 측은 “임금 아닌 교육비” 주장
삼성전자 SCSA 1기에 선발된 인문계열 대학 졸업생 A(27)씨는 오랫동안 취업 고배를 마시다 ‘삼성 입사내정자’ 명함을 받아 들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SCSA(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는 인문계 대졸자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육성하겠다며 삼성전자, 삼성SDS가 2013년부터 9회에 걸쳐 2,000여명을 선발한 채용프로그램으로 6개월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입사가 보장된다. 친구들에게 합격 턱을 내고 첫 출근한 날, ‘교육약정서’를 받아 든 A씨는 시름에 잠겼다. 불리한 계약 내용이 곳곳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교육을 중도 포기할 경우, 도서비 명목으로 준 교육지원비(최대 1,300만원)를 바로 갚는 것은 물론 삼성 측이 수업에 쓴 비용(최대 2,333만원)까지 내놓아야 했다. 채용 전환에 실패할 경우나 입사 후 2년 내 퇴사할 경우 교육비로 사용된 3,633만원을 삼성 측에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A씨는 “삼성전자가 최고 기업이지만 위약금 폭탄 위험 속에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고 싶지는 않다”며 입사를 포기했다.
‘인문계 취업난을 해결하고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삼성의 SCSA 채용프로그램 계약조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입사 내정자에게 의무근무기간과 위약금을 강요하는 약정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약정서에 ‘채용내정자로서의 지위’라고 명시한데다, 완전채용을 조건으로 하는 의무교육과정이므로 근로관계에 해당돼 지급된 교육비가 사실상 임금이라는 것이다. 최강연 노무사는 "의무교육과 평가를 거쳐 정식 채용하는 사실상의 시용근로계약에 해당하므로 근로자에게 위약금과 손해배상을 예정하는 것을 금한 근로기준법 20조 위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 측 입장은 다르다.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만들어주기 위한 비용을 교육생이 일정 기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선의로 빌려준 것이지 근로관계를 맺은 게 아니다”는 설명이다. 교육 비용이 많이 들어 중도포기자로 인한 타격이 큰 만큼 위약금이나 의무근무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는 “교육비 상환 약정은 유효하나, 임금 반환 약정은 무효”라고 보고 있다. 삼성이 지원한 돈이 교육비냐, 임금이냐에 따라 불공정 계약과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SCSA 계약조건은 다른 대기업에서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중소업체에서 “의무근무기간 내에 퇴사할 경우 수습기간에 준 교육비를 모두 반환한다”는 등의 계약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 근로기준법 저촉 여부와 상관 없이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 계약이라는 시각이 많다. 올 초 한 공공기관 보안 위탁업체는 신입교육 이후 두 달여간 현업배치가 미뤄져 입사포기 의사를 밝힌 입사자에게 “교육비 환급에 관한 서약서를 작성했으니 강사비 등 110만원을 청구하겠다”는 압박을 넣어 당사자가 반발하기도 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같은 초대기업에서 개인적 사유로 어쩔 수 없이 입사를 포기할 수도 있는 채용예정자에게 계약단계에서 불리한 지위를 강요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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