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사제범죄 늘자 법안 추진
가톨릭계 “신성성에 위반” 반발
호주에서 아동성범죄와 관련된 ‘고해성사’를 받은 가톨릭 사제가 고백 내용을 관계 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돼 논란이 되고 있다. 비밀 엄수가 생명인 고해성사의 신성성에 위배된다는 지적과 아동성학대를 근절하려면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아동성학대 문제를 조사해 온 호주 특별조사위원회는 아동보호 강화 조치로 최근 이런 방안을 포함한 85개 권고사항을 당국에 보고했다. 핵심은 성직자가 고해성사 과정에서 알게 된 아동성범죄 의심 정보를 신고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호주 정부가 강력한 제재를 꺼내든 것은 그간 가톨릭 교회의 아동성추문 사건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올해 2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1980~2015년 ‘어린 시절 가톨릭 사제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신고자가 무려 4,444명이나 됐다. 6월에는 교황청 서열 3위인 호주 출신 조지 펠 추기경이 3건의 성범죄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정부는 가톨릭 성직자에게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위원회 보고서는 “아동성학대 가해자들이 고해성사를 한 뒤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용서를 받으려 했다는 사례들이 있었다”라며 “성폭력에 노출된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고 면제 대상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가톨릭계는 정부 방침이 고해성사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한다. 고해성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지켜야 할 7가지 성사(聖事) 중 하나로 신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절차이다. 이 때 중재자인 사제는 고백 내용 및 고백자의 신원을 모두 불문에 부쳐야 한다. 만약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하면 자동 파문되는데, 1215년부터 관련 조항이 존재했을 만큼 엄격한 규율로 다스리고 있다. 호주가톨릭 주교회 의장인 데니스 하트 대주교는 “고해성사는 사제를 통한 신과의 영적 만남”이라며 “기본 자유인 종교적 고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더 태블릿’의 편집장을 지낸 캐서린 페핀스터는 “가톨릭계 아동성추문이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 이유는 고해성사를 신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범죄가 윗선에서 은폐돼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일랜드도 2015년 특별법을 제정해 성직자를 아동보호 의무신고 대상에 포함시키고 면책 특권을 부여하지 않았으나 가톨릭 교회 반대로 시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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