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영국 식민지서 독립하며
힌두ㆍ이슬람 나뉘어 피의 역사
최소 50만 죽고 1200만 터전 옮겨
무슬림 극단주의 통제불능 상태
인도, 무장단체 제어 조건 내세워
양국 관계개선 당분간 어려울 듯
파키스탄과 인도가 각각 14일과 15일 독립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독립 70주년’은 ‘분할 70주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독립과 동시에 영국령 인도는 힌두 중심 인도와 무슬림 중심 파키스탄으로 분리됐기 때문이다. 세계 언론은 이날을 맞아 아직까지 끝나지 않는 양국간 분쟁의 역사와 구원(舊怨)을 일제히 재조명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표적인 국경 관문인 와가에서는 매일 양국의 국기 하강식이 열린다. 파키스탄 유격대와 인도 국경수비대가 우의(友誼)와 경쟁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행사로 매일 최대 관광객 2만여명이 이 행사를 지켜본다. 하지만 정작 이 관문을 실제로 통과하는 인원은 일주일에 수백명이 채 안 된다. 선린관계를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사람과 물자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양국 관계를 함축한다. 다른 국경 지역인 북부 카슈미르 지역은 최근 긴장도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 12일에도 북부 카슈미르 휴전선 인근에서 총격과 포격으로 인도 군 1명과 민간인 1명이 숨졌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뿌리는 영국이 인도를 이슬람 세력과 힌두 세력으로 나눠 분리 독립시킨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 전후 인도와 파키스탄 양 측에서 발생한 이교도 공격으로 최소 50만명이 사망했다. 탄압을 피하고자 상대 지역으로 넘어간 인도 거주 무슬림과 파키스탄 거주 힌두ㆍ시크교도의 수는 약 1,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47년 분할’을 다루는 두 나라 교육 내용도 정반대다. 파키스탄에서는 “힌두교도가 이슬람교도에 폭력을 휘두르고 재산을 빼앗아 추방했다”고 가르치는 반면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가 통일 인도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무슬림연맹은 영국과 손잡고 분할독립을 시도했다”고 교육한다. 적대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5년 파키스탄을 방문하면서 양국관계가 일시 개선될 조짐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후 빈발한 무장충돌로 대립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북부 파키스탄과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무슬림 극단주의 무장집단은 양국에 골칫거리다. 인도는 파키스탄 정부가 배후에서 이들의 활동을 묵인, 이들이 발호하고 있다고 보고, “파키스탄 정부가 인도 카슈미르 지방을 공격하는 무장집단을 제어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남서부 발루치스탄을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자국인을 향한 테러부터 막아야 하는 처지다. 12일에도 발루치스탄 중심도시 퀘타에서 이들의 자살폭탄테러로 15명이 숨졌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파키스탄이 과거 무장집단을 지원해 인도 측과의 ‘대리전’에 동원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이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통제불능 상태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정치분석가 하산 아스카리는 AFP에 “인도가 무장단체 문제를 선결조건으로 내건 이상 가까운 장래에 양국간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핵 보유국으로 대립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두 나라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랜 대립구도는 양국의 내부 정치를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낀 카슈미르인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힌두민족주의의 지지를 업은 인도인민당(BJP) 정권은 최근 ‘카슈미르 분리주의자’를 향해 강경한 억압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고, 파키스탄 역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군부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어 관계 개선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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