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오감(五感) 중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 본 것만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맛있는 냄새를 맡더라도, 무언가를 만지더라도 직접 보고 나서야 확신한다. 소리 역시 보이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소리가 날 때, 그 존재가 익숙한 것임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공포는 없어지지만 확인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공포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가장 따뜻하고도 친숙한 소리인 내 아이의 목소리가 다른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면 어떨까. 영화 ‘장산범’은 이처럼 청각과 시각의 부조화를 통해 관객을 공포로 밀어 넣는다.
허정 감독은 초반 일상의 다양한 소리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귀를 예민하게 만들어 놓는다. 익숙한 물건들이 내는 소리는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날카롭게 관객의 귀를 파고들어 자극한다. 감독은 끝으로 치달을수록 주인공이 시각보다 청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둔다. 주인공들은 청각적인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청각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고, 덕분에 불안과 의심은 더욱 증폭된다.
괴생명체가 친숙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유혹한다는 이 이야기는 인터넷 괴담으로 알려진 장산범 괴담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다. 앞서 허정 감독은 전작인 ‘숨바꼭질’에서도 아파트 괴담을 통해 이야기를 키워나간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장산범 괴담, 그리고 전래동화 ‘해님달님’ 등을 차용해 영화를 만들었다. 널리 퍼진 괴담과 보편성을 지닌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흥미를 반감시키며 소개된다. 감독은 관객이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은근하게 드러내지 않고 직접적으로 하나하나 짚어준다. 이어 이 무서운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한다. 때문에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며 영화의 톤은 갑작스럽게 촌스러워지고 만다.
내레이션을 기준으로 영화는 거칠게 후반전으로 돌입한다. 그저 의심스럽기만 했던 이야기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고, 미스터리 가족극 같았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본격 호러물로서 공포감이 휘몰아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은 시각적으로 공포를 자아내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주요 소재인 소리로 인한 공포보다 더한 공포를 자아낸다는 점이 아쉽지만 공포영화 마니아들도 깜짝 놀랄만한 비주얼이기에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물론 ‘장산범’은 단순히 1차원적인 시-청각 감각을 이용해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만 그치진 않는다. ‘장산범’의 최대 강점은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적인 구성을 가졌다는 데 있다. 때문에 일반적인 공포물들이 10대나 공포물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면, ‘장산범’은 이와 달리 가족과 다 함께 보기에 적당한 공포영화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공포는 심적으로 강한 사람보다는 약한 사람에게 더 쉽게 파고드는 성질이 있다. 극중 장산범에게 잡혀가는 사람들 역시 약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희연에게 그 약점은 모성애로 나타난다. 희연은 남편과 달리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힘들어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에게 모성애는 약점이면서 한편으로는 강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희연은 단순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모든 공포를 뛰어넘을 수 있다. 이는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모성애 넘치는 희연 역을 맡아 영화의 원톱으로 활약한 염정아는 방안에서 가만히 말없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처연한 느낌을 주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염정아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 가는 아역배우 신린아는 맑지만 깊은 눈동자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남편 역의 박혁권과 할머니 역의 허진을 비롯해 딸 역의 아역배우 방유설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오는 17일 개봉.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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