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4월 29일생, 한국 나이로 서른 아홉. 불혹을 눈앞에 둔 이동국(전북 현대)의 태극마크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신태용(47) 축구대표팀 감독은 14일 이란(8월31일ㆍ홈)-우즈베키스탄(9월5일ㆍ원정)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 10차전에 나설 26명 명단을 발표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사활이 걸린 두 경기를 앞두고 신 감독은 이동국을 전격 호출했다.
이동국의 대표 발탁은 2014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38세 118일의 그는 고(故) 김용식 선생(39세 274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고령 대표선수가 됐다. 오는 31일 이란전에 출전하면 이운재(44) 수원 삼성 골키퍼 코치(16년 159일)를 넘어 최장기간 A매치 출전(19년 107일) 기록도 새로 쓴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20년 동안 꾸준히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셈. 이동국은 차두리(37) 현 대표팀 코치보다 한 살 많고 대표팀 막내 김민재(21)와는 열일곱 살 차다.
이동국이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위해 소방수로 소환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2월, 쿠웨이트와 브라질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한국은 못 이기면 본선은커녕 최종 예선도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당시 막 지휘봉을 잡았던 최강희(58) 전북 감독은 이동국을 낙점했고 그는 쿠웨이트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기대에 부응했다.
이동국이 신태용호에 이름을 올린 8월 14일은 그의 첫 쌍둥이 딸인 재시-재아(10) 양의 생일이기도 하다. 평소 ‘딸 바보’인 그가 두 딸에게 기억에 남을 생일 선물을 해 기쁨 두 배였다. 이동국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요즘 사람들이게 ‘다둥이 아빠’로 더 친근하지만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 올림픽, 국가대표에 번갈아 부름 받으며 몸이 성치 않을 정도로 수많은 국가대항전을 소화한 ‘산 증인’이다.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는 늘 고배를 든 ‘비운의 국가대표’이기도 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에 이어 전성기였던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대회 직전 무릎 부상으로 낙마했다. 2010년 남아공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았지만 우루과이와 16강에서 일대일 찬스를 놓쳐 고개를 숙였다.
팬만큼 안티도 많은 선수가 이동국이다. 아무리 잘 해도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골을 못 넣으면 많이 넣으라고 하고 골을 넣으면 수비를 못 한다고 하고 수비도 열심히 하니 도움이 적다고 한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는 실력으로 극복해냈다. K리그 득점왕(2009)에 이어 도움왕(2011)까지 차지하며 ‘골만 넣을 줄 아는 선수’란 편견을 바꿔 놨다. 현재 프로축구 현역 최고령인 이동국은 지금까지 K리그 통산 196골을 터뜨렸다. 아무도 밟지 못한 200골 고지에 단 4골만 남겨놨다. 도움도 68개나 기록해 K리그 첫 70(골)-70(도움) 클럽 가입도 눈앞에 뒀다. 지난 시즌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고 올 시즌도 18경기 4골 2도움을 기록 중이다. 득점 뿐 아니라 공격 전반에 걸쳐 농익은 기량을 보여주는 이동국에 대해 신태용 감독은 “내가 원하는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을 갖고 있다. 2선 공격수가 침투하는 타이밍에 맞춰 내주는 패스의 클래스는 최고”라고 엄지를 들었다.
신 감독은 2009년 성남 일화(성남FC) 감독을 맡았을 때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였던 이동국을 방출하다시피 내보낸 ‘악연’이 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전 감독 부임 직전인 2014년 9월, 국가대표팀 코치로 임시 지휘봉을 잡았을 때 이동국을 대표팀에 발탁해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가입 기회를 줬다. 그 전까지 센추리클럽에 1경기 모자란 A매치 99경기였던 그는 4경기를 더 뛰어 현재 103경기 33골을 기록 중이다.
신 감독은 최근 이동국에게 전화를 걸어 국가대표 발탁 의향을 직접 물었다. 이동국은 “경기에 뛰며 보탬이 되고 싶지만 정신적 리더 역할만 한다면 가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말했다. 신 감독이 원한 답이었다. 신 감독은 “내일 모레면 마흔인 이동국이 열심히 뛰면 까마득한 후배들이 안 뛰겠느냐. 이동국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게 다가 아니다. 이동국이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기에 뽑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국은 “기쁨보다 책임감이 크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출전 시간이 주어지면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도록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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