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클릭 이 사람 “’태백산 호랑이’가 ‘동해의 호랑이’로 거듭나 기뻐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클릭 이 사람 “’태백산 호랑이’가 ‘동해의 호랑이’로 거듭나 기뻐요”

입력
2017.08.15 04:40
0 0

신돌석 장군 손자 신재식씨

신재식씨.
신재식씨.

“정말 기쁩니다. 할아버지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의 바다를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항일의병장 신돌석(1878~1908) 장군의 손자인 신재식(67)씨는 이번 광복절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최근 해군 당국으로부터 ‘신돌석함’ 진수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다. 1,800톤급 잠수함인 신돌석함의 진수식은 다음달 초 열릴 예정이다. 신씨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잠수함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기뻐할 것”이라며 “국가가 저희 집안에 큰 선물을 주셨다”고 했다. 신씨의 아버지는 신돌석 장군의 업적을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신씨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팔순의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벌써 60년이 넘었다. 그의 집안 뿌리는 신돌석 장군이 태어난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다. 하지만 그는 영양군 석보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인근 청송으로 이사했다.

이렇게 떠돈 데는 이유가 있다. 신돌석 장군은 당시 결혼을 했지만 후손 없이 30세에 숨졌다. 신 장군의 부인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시동생의 아들(신씨의 아버지)을 양자로 삼았다. 신 장군은 형제만 있었다. 일본군이 신 장군의 가족을 검거하려 하자 양아들과 함께 영양군의 일월산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화전을 일구며 어렵게 생활했다고 한다. 신씨가 태어난 곳이 영양인 것은 이 때문이다. 신씨는 고교 졸업 후 줄곧 농협에서 근무했다.

신돌석 장군의 활약상을 알린 이는 신씨의 아버지였다. 10여년 전 85세로 작고한 그의 아버지 신병욱씨는 신 장군의 항일운동 업적을 증명하기 위해 10여년 간 뛰어다녔다. 대학과 각종 보훈단체, 관공서 등을 다니며 그의 양아버지 신돌석 장군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당시 보훈기관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곳곳을 훑으며 할아버지의 전투 상황이 실린 신문기사 등을 찾아냈지요.”

이런 노력 덕에 1962년 신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1973년엔 고향에 있던 신 장군의 묘를 국립묘지 애국자 묘역으로 이장했다. 신돌석 장군의 본명은 태호다. 어릴 때 돌석으로 불렸다. 을사조약 체결 이듬해인 1906년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경북과 강원도 일대를 누볐다. 당시 의병장은 양반 출신이 많았지만 신 장군은 평민이었다. 그는 경북과 강원도를 넘나들며 일본군 부대와 관공서를 공격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에겐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고향에 생가와 기념관이 있고 매년 추모제도 열린다.

신씨는 “할아버지의 별명이 ‘태백산 호랑이’였는데 ‘동해의 호랑이’로 거듭나게 됐다”며 “앞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할아버지의 업적을 알리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훈기자 jhlee0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