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기림일 5회 맞아
길원옥 할머니 생애 첫 공연
“신인가수 길원옥입니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9) 할머니가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마련된 나비문화제 무대에 오르자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생애 처음으로 무대에 선 길 할머니는 관객 호응에 “전라남도 남원고을 바람났네 춘향이가∼”로 시작하는 애창곡 ‘남원의 봄 사건’을 부르며 화답했다. 최근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 15곳을 담아 녹음한 앨범을 발표한 길 할머니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실 것이냐”는 사회자 질문에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라며 웃음을 지었다. 길 할머니는 이날 ‘한 많은 대동강’ ‘고향의 봄’을 비롯해 총 네 곡을 불렀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모인 300여명 관객들도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1997년 별세)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것을 기념, 2012년 말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가 지정해 올해 다섯번째 맞는 위안부 기림일인 이날 서울 곳곳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오전 8시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이름이 새겨진 작은 소녀상 500점이 청계광장을 수놓았다. 소녀상 500점은 남한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에 미등록 피해자와 북한 지역 피해자 예상 인원을 합한 숫자다. 이날 전시회를 주최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ㆍ기억재단은 오후 4시 14분까지 총 8시간 14분 동안 전시를 진행했다. 위안부 기림일인 ‘8월 14일’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들 단체는 ‘2015 한일 합의 무효 100만 시민모금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한국 정부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 결과로 지급한 10억엔 반환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오는 15일부터 오는 11월 22일까지 100일 동안 100만명 시민이 1,000원씩 기부하는 모금 캠페인을 벌인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제 우리 곁에는 37명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만 남았는데 진정한 해방이란 피해자를 인정하고 그들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청계광장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은 위안부 기림 행사를 보고 발길을 멈췄다.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해방의 벽’이라고 이름 붙은 게시판에는 “할머니 힘내세요! 저희가 마지막 집회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잊지 않겠습니다”는 등의 응원 메모로 가득 찼다. 인천에 사는 박민선(31) 씨는 “이런 행사를 통해 할머니들이 마음에 입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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