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한 분위기에서 맞이하는 광복 72주년의 아침이다.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체제로 갈라져 대립해온 ‘비정상’의 상황이 그만큼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비정상의 정상화는 민족과 국가적 숙명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상화의 비전으로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상정해왔다.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현재의 분단체제에 정통성을 부여하지 않았고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국가 과제로 못 박았다.
반면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은 ‘하나의 민족, 두개 국가’ 현실을 인정해왔다. 현재 정부의 공식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보완한 김영삼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뒤이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통일국가를 지향하지만 동질성 회복에 이어 남북연합 단계를 설정함으로써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한다. 헌법의 ‘단일민족, 단일국가’ 조항과 통일방안이 전제하는 ‘단일민족, 두 국가’ 현실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지만, 남북이 하나의 민족 공동체라는 전제에는 이견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헌법의 통일조항은, 물론 20년 넘게 승계되어 온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대해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한국사회에 분단을 ‘비정상’의 극복 과제가 아닌 ‘정상상태’로 인식하는 근원적 정체성의 변동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도 ‘한국인의 가치관과 의식조사’에 따르면 통일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51%로 다수인 가운데 절대 통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32%로 통일에 소극적이거나 거부감이 크다.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여론은 17%에 불과했다. 10년 전 조사에서는 통일에 반대하는 여론이 7%,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여론은 28%였다. 통일에 대한 인식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하나의 민족’이라는 대전제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정체성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북한주민을 한민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비율이 1996년에는 90%였지만, 2006년 79%, 2016년에는 69%까지 떨어졌다. 충격적인 결과다. 특히 해방 이후 출생자 사이에서 젊은 세대일수록 북한주민과 남한주민을 서로 다른 민족으로 인식하는 분리주의적 사고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 추세가 한 세대만 지속되어도 ‘하나의 민족’ 의식은 소수여론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나의 민족, 두 국가’의 정체성을 인정하되,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지향해온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전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민족공동체 전제를 제외하면 통일을 정당화할 이렇다 할 근거를 우리 헌법이나 정부의 통일방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분단을 비정상의 과제로 볼 것인지, 뉴노멀로 인정해야 할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의 대북경고에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 미사일을 미국의 대표적 휴양지 괌에 포위사격의 엄포로 맞서며 긴장감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에서 북핵 해법이나 동맹의 문제를 넘어선 새로운 통일구상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무대 뒤편에서는 신개념 통일구상을 가다듬기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두 민족, 두 국가’라는 생소한 정체성의 전염 속도가 무섭다. 아직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지금이야말로 적기다.
정한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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