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삼성)이 지난 11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원정 투어를 시작으로 ‘이별 여행’의 스타트를 끊었다. 관심을 모았던 KBO리그 사상 첫 원정 은퇴 투어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는 평이다. 이날 행사 주최 구단인 한화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대전구장을 찾은 팬들도 이날은 ‘삼성 이승엽’이 아닌 ‘한국 야구 이승엽’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배웅했다. 야구계는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던 성숙한 ‘리스펙트(respect) 문화’의 토양이 다져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 본 한화 팬들에겐 또 다른 얼굴들이 오버랩 됐을 것이다. 홈 팬들에게조차 변변한 인사의 기회조차 없이 구단을 떠나야 했던 조인성과 송신영이다. 프랜차이즈 선수는 아니지만 한화에 수년간 몸 담았던 베테랑이며 한국 야구로 봐도 19~20년간 활약하며 나름대로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이다. 조인성은 LG, SK를 거치며 KBO리그의 간판 포수로 활약했고, 국가대표 포수까지 지냈다. 송신영은 우완 정통파 투수 중 최다인 통산 709경기에 출전한 선수다. 하지만 둘은 지난 6월 박종훈 한화 단장과 불과 10여 분의 면담 후 곧바로 웨이버 공시됐다. 며칠 후 언론을 통해 은퇴를 발표한 송신영은 구단으로부터 고민을 위한 며칠의 시간조차 얻지 못했다. 선수가 먼저 구단을 통해 은퇴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면 훨씬 더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었다. 조인성도 은퇴 여부를 떠나 “팀을 떠날 수는 있지만 20년 야구 인생이 10분도 안 되는 미팅에서 결정됐다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얼마 전 SK는 자체적으로 이호준의 원정 은퇴 기념식을 준비해 깜짝 이벤트를 열어줬다. 이호준은 2000년대 후반 ‘왕조‘를 구축했던 SK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선수이자 2000년 SK 창단 때부터 함께했던 이호준에게 인천은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이번 시즌 NC가 마지막으로 인천을 찾은 날, SK는 전례 없는 원정팀 선수의 기념식을 열어 극진한 ‘전관 예우’를 한 것이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를 연 한화는 “홈 팬들의 정서를 고려해 과하지 않으면서도 서운하지 않은 행사를 치른다는 가이드라인을 세웠다”고 밝혔다. ‘전설’의 마지막을 배웅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집을 나간 선수도 마지막엔 따뜻하게 다시 맞는 구단도 있는 마당에 제 식구도 챙기지 못하는 한화는 왠지 주최자로 어울리지 않는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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